29. 늦되고 늦된 당신에게

채헌
채헌 · 짓는 사람
2024/04/20
델타 일식 여행 ⑤ 그레이트 베이신 국립 공원
나는 한 나무 앞에 서 있다. 브리슬콘 소나무Bristlecone Pine. Pinus Longaeva라고도 하고 우리말로는 강털 소나무라고 부르는 이 나무는 4천 살쯤 되었다. 

나무는 다른 나무들은, 나무뿐만 아니라 웬만한 풀, 꽃, 동물들조차, 살기 힘든 곳에서 자란다. 고도가 높아 춥고 뜨거운, 10월에도 눈이 내리고 저 앞으로 얼어붙은 골짜기가 보이는 건조하고 척박한 경사로 같은 데서. 나무는 자라는 중에도 많은 물과 양분을 필요로 하지 않아 이런 곳에서 자랄 수 있다. 

나무의 생애는 대략 이러하다. 가을에 작은 씨앗 하나가 떨어진다. 봄이 와 따뜻해지면 발아가 시작된다. 작고 노란 줄기가 거친 땅으로 뿌리를 뻗어내고, 씨앗 껍질을 깨뜨리고 싹이 튼다. 뿌리와 싹을 틔우면 몇 년간은 거의 자라지 않는다. 

어린 나무는 해를 받기 위해 위로 위로 자란다. 이때 나무의 가지는 아주 가늘고 부드럽다. 그래서 바람이 세게 불어도, 눈이 많이 와도 부러지지 않는다. 인과는 역순일 수도 있다. 강풍과 폭설에 상하지 않기 위해 나무는 아주 가늘고 부드러운 가지를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인과와 무관하게 나무는 계속 계속 자란다. 새로운 가지가 뻗어나고 몸통이 커지고 껍질이 두터워진다. 하지만 그 속도는 여전히 느리다. 100년에 겨우 1인치 남짓. 1인치면 2.5cm, 손가락 한 마디쯤 된다.

수백 년이 되어서야 나무는 완전히 다 자란다. 나뭇가지마다 뾰족한 바늘잎이 다닥다닥 돋았고, 솔방울이 주렁주렁 열린다. 솔방울은 두 가지 모양이다. 원뿔 모양의 솔방울과 작은 바나나 혹은 맛동산 과자 모양으로 뻗어난 솔방울. 원뿔 솔방울은 종자 역할을, 작은 바나나 혹은 맛동산 모양의 솔방울은 꽃가루 역할을 한다. 두 솔방울이 한 나무에 있어 번식이 쉽다. 주변에 다른 나무가 없어도 씨앗을 맺을 수 있다. 
솔잎과 솔방울이 빼곡하게 달린 나뭇가지는 무거워 자꾸만 아래로 휘어진다. 다른 나무들의 가지가 공중...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8년간의 습작기를 보내고 2023년 첫 장편소설 『해녀들: seasters』를 냈습니다. 작고 반짝이는 것을 오래 응시하고 그에 관해 느리게 쓰고자 합니다.
33
팔로워 9
팔로잉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