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베다니로 가는 길(1) 어느 광산 자본가의 죽음

안순우
안순우 · 시와 소설을 사랑합니다.
2024/04/23
구글에서

[장편소설: 베다니로 가는 길(1)- 어느 광산 자본가의 죽음]

인민위원회 정문 앞에 높이 세워진 국기봉에는 태극기가 바람에 세차게 휘날리고 있다. 38선이 막혀서 전기나 통신과 기차의 왕래는 끊어졌지만 38도선 이북에 태극기는 여전히 펄럭이고 있다. 8.15 해방 후 6개월간의 소련 군정이 끝나고 1946년 2월에 북조선인민위원회가 설치되었다. 사실상 38도선 이북에 정부 기능이 시작된 것이다. 그 조치로 1946년 3월 8일부터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토지의 무상 몰수, 무상 분배와 전 산업의 당소유화를 단행하기 시작했다. 칼의 권세로 뺏으려는 자와 맨손으로 뺏기지 않으려는 자가 충돌하고 있다. 

인민위원회 건물 밖으로 뻗은 연통에서 하얀 갈탄 연기가 바람에 휘날려서 하늘로 흩어졌다. 아침부터 평안남도 안주군 인민위원회는 분주하게 돌아간다. 회의실에서 오랜 회의가 끝나자 간부들로 보이는 권총을 허리에 찬 사람들이 먼저 지프에 오르고 총을 든 보안대 청년들은 트럭에 오르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다리를 절룩거리는 젊은이 한 사람이 지프에 올라탔다. 모두들 얼굴에 웃음기 하나없이 냉랭하다. 잠시 후 인민위원회 건물의 출입문이 열리면서 지프차가 앞서고 뒤에는 트럭이 먼지를 일으키며 건물을 빠져나갔다. 

삼월의 잿빛 하늘이 을씨년스럽다. 겨울도 아니고 아직 봄도 아니건만 하늘에서는 곧 눈발이 휘날릴 것만 같다. 멀리 청천강(淸川江)의 얼음이 녹지 않았듯이 산골짜기와 산기슭에도 잔설이 녹지 않아서 광산촌의 검은 산비탈에 대비되어 흰 눈은 더 하얗게 보였다. <황덕광업소>로 올라가는 언덕배기에 올라서자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이 봄바람이라 부르기에는 차디차다.

겨우내 시냇물이 얼어붙었지만 탄광촌 얼음은 시커멓다. 봄부터 초겨울에 물이 얼기 전까지 시내는 항상 시커먼 물이 흘러간다. 그것이 얼어붙으니까 얼음도 시커먼 것이다. 시냇가 옆에 무리를 지어 서있는 오리나무에 봄물이 오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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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불멸성과 불가해성을 고민합니다. 가장 존귀하지만 또 가장 부패한 인간 연구에 천착하여 틈틈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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