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와중에 책을 써? 만들어?
2024/04/12
작년 12월이었다. 2023년을 보름쯤 남겨놓은 어느 날. 마침내 첫 소설을 탈고한 후 출판사와 곧바로 미팅이 잡혔다. 출판사 대표는 보자마자 원고가 재미있다고 했다. 약간은 의외라는 표정과 함께.
큰 출판사는 아니었지만 나름 평판은 좋은 출판사라 안심이 됐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혹시 출판과 관련해 원하는 게 있냐는 질문에 이른 봄에는 책이 나왔으면 한다. 그거 외에는 없다. 라고 답한 게 문제였다. 대표는 세상 물정 1도 모르는 사람에게나 지을 법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게 빨리 내려면 감독님이 직접 하시는 방법 밖에 없어요.”
대표는 표정이 꽤 풍부한 사람이었다.
*
소설을 썼지만 주위에 아는 이들은 아직 날 감독이라 부른다. 제대로 된 영화를 찍던 기억은 아주 오래되어 이젠 화석처럼 남았지만, 아무튼 이 바닥에서는 한번 영화감독으로 불리면 영화를 찍든 못 찍든 그저 감독으로 불리게 된다. 그런데 그건 마치 천형과도 같다. (그게 왜 천형인지 맥락이 이해된다면 아마도 당신은 이 바닥 사람이겠지.) 아무튼 소설을 빨리 내고 싶었던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사실 처음부터 소설을 쓰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시작은 드라마였다. 중고 LP가게를 배경으로 상처 입은 인간 군상들이 저마다의 추억...
사람들에게 버려졌을 뿐인 유기견이 들개라 불리며 인간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비춰지는 게 마음에 걸려 다큐멘터리 [개와 고양이를 위한 시간]을 만들었다. 다큐의 마지막에는 사심(?)을 담아 길 위의 생명들을 위한 음악회도 열었다. 2023년에는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반려동물 피해를 다룬 [인간의 마음]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상영됐다. 동물원과 수족관, 펫숍이 하루 빨리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기를 염원한다. 몇 편의 영화와 다큐를 쓰고 연출했고, 2024년 3월, 첫 소설 <이상한 LP가게와 별난 손님들>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