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22
[주의] 영화 <오펜하이머>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약간의 스포일러를 참는다면 아래 내용이 영화 관람에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그랬을 거 같은데, 내겐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는 건 꼭 해야만 하는 여름방학 숙제처럼 일종의 피할 수 없는 ‘의무’였다. 30여 년 전 물리학과에 처음 입학했을 때 과학 또는 과학자와 사회의 관계, 책임, 그런 심각한 주제를 고민하게 만든 주인공이 오펜하이머였기 때문이다. 그런 고민은 이후 대학원 시절이나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까지 이어졌고 그래서 어쭙잖게 과학과 사회가 소통하는 방법을 나름 찾아 나서기도 했었다. 몇 년 전부터는 대학에서 교양과학을 가르치면서 기회가 되면 항상 맨해튼 프로젝트를 학생들에게 소개해 왔다. 그 덕분에 핵무기 개발과정이나 주요 인물들에 대한 기본정보는 어느 정도 친숙하게 되었다. 영화 <오펜하이머>가 크게 흥행한다면 앞으로 수업에서 학생들과 훨씬 더 수월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두 차례에 걸쳐 영화를 본 느낌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영화 <오펜하이머>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맨해튼 프로젝트”였다. 각종 책과 문헌으로만 봐 왔던 오펜하이머와 로스앨러모스, 그리고 트리티니 실험을 이렇게 현장감 있게 살려낼 수 있었던 것은 놀란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특히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의 모습들이 인상적이었다. 멀지 않은 과거의 일이니까 쓸만한 자료가 충분히 많이 남아 있겠지만, 그걸 직접 화면에 다시 구현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영화의 원작인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에는 핵무기 관련 과학적인 내용이 많이 나온다. 영화에서는 그런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들을 아주 살짝 맛만 보여주는 수준에서 멈춘 것이 나 같은 전공자들에게는 조금 아쉬웠지만, 절대 다수의 관객들을 위해서는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영화 제목이 ‘오펜하이머’이듯 영화는 오펜하이머 전체 생애를 찬찬히 훑어간다. 전반적으로, 상당히 충실하게 오펜하이머의 생애를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