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대표 작곡가 드뷔시의 은밀한 사생활

정은주
정은주 · 작가/음악 칼럼니스트
2024/03/07


佛 대표 작곡가 드뷔시의 은밀한 사생활 [정은주의 클래식 산책]


기존 음악 형식에 반기 든 청년 클로드 드뷔시
음악적 성취 후 잇따른 사생활 논란으로 '타격'

드뷔시. 사진=연합뉴스

오직 내일의 사랑뿐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드뷔시가 남긴 음악은 그가 사랑했던 여자들의 눈물이 고여 만든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프랑스의 대표 작곡가이자 인상주의 음악을 이끈 클로드 아실 드뷔시(Claude-Achille Debussy, 1862~1918)는 수많은 여인들을 사랑했고, 그 여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가 쓴 연애편지들은 하나같이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당신을 강렬하게 사랑해요’라고요. 그러나 ‘내일은 다른 여자를 사랑할 거예요. 그것이 내 사랑의 방식이거든요’라는 마지막 문장을 빼먹은 채로요.

이 세상에 변치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요. 사랑도 변하고요. 그러나 드뷔시의 사랑처럼, 변덕이 죽 끓듯 한 사랑도 흔치 않을 거예요. 그는 평생 그 누구에게도 박수 받지 못한 사랑에 빠져 지냈는데요. 물론 두 사람이 함께한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나온 행동들이 다른 사람들의 칭찬을 받아야 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요.

그러나 그 대단한 사랑이 시대의 이념과 가치를 거스르면서 또 누군가가 삶을 마칠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요. 무엇보다 끔찍한 그 사랑에 지친 소중한 친구들마저 떠나갔다면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분명 드뷔시는 사랑 앞에서 '나쁜 남자'였습니다.

프랑스의 작은 모차르트

13살의 드뷔시는 데뷔 연주회를 열었습니다. 그의 부모, 특히 아버지가 드뷔시에게 거는 기대가 컸는데요. 오스트리아의 모차르트처럼, 프랑스의 작은 모차르트로 아들이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로 성장하길 바랐거든요. 다행히 드뷔시는 피아노 연주를 좋아했고, 또 재능도 뛰어났습니다.


가난한 형편에서 그가 피아노를 배우고 재능을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아마추어 피아니스트 모테 드 플레르빌덕분이었는데요. 모테 부인은 프레데리크 쇼팽의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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