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륜의 기원과 악의 탄생 - 박한상 존속 살해 사건(1994)

강부원
강부원 인증된 계정 · 잡식성 인문학자
2023/02/08
영화 <공공의 적>에서 자식에게 살해당한 어머니가 쓰러져 있는 모습. 어머니는 아들의 손에 죽는 마지막 순간에도 끝까지 자식의 죄를 숨겨주기 위해 범행중 부러진 아들의 손톱을 집어 삼킨다.
동정 없는 세상
   
어떤 범죄자라도 그들의 세세한 사연과 처지를 깊이 알게 되는 순간 동정이 가게 마련이다. 어찌할 도리가 없는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저지른 범죄는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만든다. 그 범죄가 막다른 길에 내몰린 존재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범한 순간적인 실수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법적 처벌은 면하게 해주지 못할지라도, 복잡한 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누구나 안쓰럽게 여기며 연민의 감정을 품는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1994년 5월 19일 벌어진 존속 살해 사건의 범인 박한상은 당시 어느 누구에게도 용서나 동정을 얻지 못했다. 자식이 부모를 죽였다는 듣도 보도 못한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천인공노할 일이라며 몹시 분개했다. 박한상 살인은 ‘패륜(悖倫)’이라는 다소 생소한 어휘를 사회적으로 통용되게 한 사건이기도 했다. ‘패륜’은 자식이 부모를 살해한다는 상상 못할 범죄를 설명하기 어려웠던 당시 언론들이 찾아 꺼내든 단어였다. 아무리 시대가 달라졌다 해도 천륜과 인륜이 이리 무너질 수 있느냐면서 개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박한상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자 언론은 패륜이라는 단어를 꺼내기 시작했다(「어떻게 이런 패륜이」, 『동아일보』, 1994년 5월 27일)
   
박한상 존속 살인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수준인 100억대 재산을 지닌 강남 부유층 가정에서 일어난 친족 살인 사건이었던지라 큰 화제가 됐다. 신문과 텔레비전 뉴스 가리지 않고 연일 머리기사와 톱뉴스로 다뤘으며, 범인 박한상의 얼굴과 이름은 일약 전 국민들에게 모두 알려졌다. ...
강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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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신문과 오래된 잡지 읽기를 즐기며, 책과 영상을 가리지 않는 잡식성 인문학자입니다.학교와 광장을 구분하지 않고 학생들과 시민들을 만나오고 있습니다. 머리와 몸이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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