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드림>을 긍정하는 이유
2023/05/17
※<드림>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씨네21'에 기고한 글
<드림>이 받은 혹평 중에는 이병헌 감독의 장기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극한직업>(2018), <바람 바람 바람>(2017) 등 전작에서 선보인 시원한 유머가 부족하다는 말이다. 확실히 웃음 측면에서 <드림>은 전작들과 결이 다른데,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이병헌표 웃음’이 줄었다는 것이다.
집의 부재가 가져온 변화
이병헌표 웃음은 뭘까. 그의 인물들은 뻔뻔한 소리를 또박또박 쉴 새 없이 떠들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순간에(주로 불리할 때) 어이없는 애교를 부리기도 하고, 때때로 고함에 상욕까지 시원하게 쏟아낸다. 그들은 속물스럽지만 귀엽다. 그러나 이병헌 코미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자조적인 유머’다. 그들은 자신의 한심하고 절망스러운 상황에 대해 물색없이 떠든다. 상황의 엿같음을 폭로하면서도 별일 아니라는 듯 능청을 떤다. <드림>에서 소민(아이유)이 “페이가 열정을 못 따라와서 열정을 페이에 맞췄다”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스스로를 놀리는 과정에서 웃음이 터져나온다. 이때 웃음은 상처와 꼭 닿아 있다.
<극한직업>의 형사들은 범인은 못 잡았는데 치킨은 잘 팔리는 아이러니에서 웃음을 만들어낸다. 시뻘건 상처를 시원하게 드러내서 선선한 바람을 쐬는 것. 잠시 따가움을 견디고 딱지가 앉도록 기다리는 것이 이병헌표 웃음의 작동 방식이다. 유머는 일상의 불행을 비료 삼아 만개한다. <극한직업>에서는 마약단속반의 무능력함과 궁핍함이, <스물>(2014)에서는 실수를 남발하는 서투른 사랑이 유머의 재료가 됐다. 그리고 홈리스 월드컵을 다룬 <드림>의 메인 테마는 ‘집의 부재’다. 여기서 잠시 이병헌 영화에서 ‘집’의 의미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2019)에서 은정(전여빈)이 친구들에게 안겼던 곳. <드림>에서 홍대(박서준)가 다음 행선지를 결정한 곳. 이곳들이 이병헌의 집이다. 단순히 ...
2016년 한 영화잡지사에서 영화평론가로 등단.
영화, 시리즈, 유튜브. 문화 전반에 대한 글을 씁니다.
INFJ
@박효영 제 글의 취지를 완벽히 이해해신 것 같아 기쁘고 감사합니다. 새로운 시도에 대한 측면에 집중하면 충분히 추천하는 작품이에요.
'멜로가 체질'도 그렇고 이병헌 감독의 지속적인 모험과 시도의 연장선상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군요. 코미디만 잘 만드는 감독으로 갇히지 않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말씀해주신대로 집의 결핍이 아니라 집의 부재가 전제된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국가대표' 스타일의 느끼한 감동 코드로 갈 수밖에 없었을텐데 이병헌 감독의 강점이 나오기엔 너무 어려웠겠죠... 그래도 평론가님이 추천해주신 걸로 받아들이고 드림 보고싶어지네요~
'멜로가 체질'도 그렇고 이병헌 감독의 지속적인 모험과 시도의 연장선상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군요. 코미디만 잘 만드는 감독으로 갇히지 않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말씀해주신대로 집의 결핍이 아니라 집의 부재가 전제된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국가대표' 스타일의 느끼한 감동 코드로 갈 수밖에 없었을텐데 이병헌 감독의 강점이 나오기엔 너무 어려웠겠죠... 그래도 평론가님이 추천해주신 걸로 받아들이고 드림 보고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