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중에 소개하는 애송시(feat. 다인님)
2021/11/03
다인님이 써 주신 글 '혹시 시 좋아하세요'라는 글을 읽고 답글을 남겼다가 마음이 좀 더 동해서 제가 좋아하는 시 몇 편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답글에도 남겼지만, 저는 시집을 즐겨 읽진 않는 편이라서 시를 많이 알진 못합니다. 그나마 알고 있는 시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몇 편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먼저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으로 잘 알려진 백석 시인의 후기 대표작들입니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잠풍 날씨가 너무나 좋은 탓이고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이고 언제나 꼭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은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또 내 많지 못한 월급이 얼마나 고마운 탓이고
이렇게 젊은 나이로 코밑 수염도 길러보는 탓이고 그리고 어늬 가난한 집 부엌으로 달재 생선을 진장에 꼿꼿이 지진 것은 맛도 있다는 말이 자꼬 들려오는 탓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포근한 봄철날 따디기의 누굿하니 푹석한 밤이다
거리에는 사람두 많이 나서 흥성흥성할 것이다
어쩐지 이 사람들과 친하니 싸다니고 싶은 밤이다
그렇건만 나는 하이얀 자리 우에서 마른 팔뚝의
새파란 핏대를 바라보며 나는 가난한 아버지를
가진 것과 내가 오래 그려오던 처녀가 시집을 간 것과
그렇게도 살뜰하던 동무가 나를 버린 일을 생각한다
또 내가 아는 그 몸이 성하고 돈도 있는 사람들이
즐거이 술을 먹으러 다닐 것과
내 손에는 신간서(新刊書) 하나도 없는 것과
그리고 그 <아서라 세상사(世上事)>라도 들을
유성기도 없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내 눈가를 내 가슴가를
뜨겁게 하는 것도 생각한다
백석은 평안북도 출신 수재로 일본 유학을 다녀온 뒤 경성에서 조선일보에 취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