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풋잠 4회 – 신자유주의 사회와 전근대 사회
“자, 그러면 두 번째 토론 주제로 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과연 우리는 곁에 있는 사람을 늘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면 이번에는 방금 평생 독수공방을 하기로 결의하신 우리 경헌님 이야기부터 들어볼까요?”
바대표는 나에게 물었다. 독수공방을 결의했다니... 너무하네.
“이 책에서 말하듯 서로를 평등한 주체로 생각하고 경청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죠. 그러한 의미에서 저의 이야기도 경청해주시는 게 어떨까 싶네요. 허허. 저는 제가 별나다는 이야기를 한 것 뿐인데 독수공방을 하기로 결의했다니요. 허허.”
“그래요. 알았습니다. 뭐, 별나다고 평생 혼자인 건 아니니까요.”
바대표가 대답했다. 사과를 듣고 싶었으나, 바대표는 사과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성장에 대한 논의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에서 나오듯, 우리 사회가 이질공포증이 넘쳐흐른다는 말에는 동의합니다.
저는 군대를 면제받을 정도로 우울증이 심합니다. 그런데 어디 술자리 같은 곳에 가서 군대 면제라고 하면 바로 듣는 이야긱 있습니다. ‘신의 아들’이네라고요. ‘신의 아들’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 맥락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하나는 공통이 겪게 되는 어떤 체험이 정말로 고통스러웠다는 것입니다. 그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다른 하나의 맥락은 그 체험에 가지 못할 정도로 개인적으로 아프거나 힘든 사람의 고통은 고통이 아니라는 맥락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분명히 고통스럽거든요. 그런데 그 고통에 대해서 쉽게 말할 수조차 없어요. 말하면 무시당하거나, 이상한 사람 취급당하니까.
나의 고통은 함부로 발화할 수 없게 만들어놓으면서, 사회 공통으로 겪게 되는 것으로 상정되는 고통에 대해서는 쉽게쉽게 말하고, 과장하기도 하고, 그걸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아예 신의 아들로 만들어버리는 어떻게 보면은, 정상성을 벗어난 사람들의 감정에서는 못 되먹은 것 같은 심보를 마주할 때는 참 짜증나는 기분도 듭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신자유주의에 결부시키는 저자의 논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