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음에 대하여 ㅣ 헛되고, 헛되고, 헛되다

악담
악담 · 악담은 덕담이다.
2024/06/12
 
8살 딸아이가 엄마 품에 안긴다. 향긋한 샴푸 냄새와 함께 또래 아이들 특유의 시큼하지만 달콤한 땀 냄새가 풍긴다. 엄마는 딸의 가느다랗고 긴 머리카락을 쓰다듬다가 말한다. " 이제 머리를 자를 때가 됐구나. " 엄마 옆에 있던 사내아이는 그 모습을 떠올리며 지난 날을 회상한다. " 작년에도 엄마는 동생의 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똑같은 말을 했다. " 
몇 년 전에 본, 그러나 지금은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 영화 속 한 장면이다. 이 장면이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는 이 대사가 가지고 있는 인생에 대한 은유 때문이다. 머리가 길게 자라면 잘라야 할 때가 온 것이고, 자른 머리는 다시 자란다는 것. 그리고 엄마는 똑같은 말을 할 것이다. " 이제 머리를 자를 때가 됐구나. " 인생도 어쩌면 그런 것이 아닐까 ? 인생이라는 이름의 시간은 우리의 목적과 노력 없이도 끝없이 자라는 머리카락과 같은 것이며 웃자란 시간의 흔적들은 미련 없이 잘라야 한다는 것.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야말로 무의미하다는 것. 자를 때가 되어서 그저 잘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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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호 하드보일드 센티멘털리티 악담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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