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k Me Anything

라이뷰

Ask Me Anything

소설가는 왜 전두환 책을 썼나?

정아은
정아은 인증된 계정 · 소설, 에세이, 논픽션 작가
2023/12/18
alookso 유두호


장편소설 5권, 인문 에세이 3권을 출간한 정아은 소설가가 ‘전두환 책’을 쓴다고 했을 때, 동료 작가들은 무척 놀랐다. 왜 하필 현대사? 왜 전두환? 정아은은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에서 전두환이란 인물의 태생부터 죽음까지를, 그의 집권 전후의 시간을, 나아가 그가 권좌에서 물러난 이후의 여생을 지금껏 나온 그 어떤 문헌보다도 철저히 복원했다. 영화 <서울의 봄>이 관객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받으며,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을 찾는 독자가 늘고 있다. 이 책은 전두환을 악마처럼 몰아붙이는 작업이 아니고, 영웅으로 미화하는 작업도 아니다. 대신 전두환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치열하게 규명하고, 그의 영광과 모순, 몰락, 그리고 그 인물을 탄생시킨 ‘악(惡)의 기원’을 대한민국의 현대사라는 지평 위에서 가감 없이 드러내려는 전기적인 작업이다.
 📌 전두환이 세상을 떠난 날
 
단톡방이 몇 백 개의 메시지로 차올랐다. 친구 몇 명이 전화를 걸어왔다. 소식을 알리는 인터넷 기사에는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렸다. 사람들에게서 빠르고 격렬한 반응을 끌어내는 이 날의 풍경을 이루는 주된 정서는 슬픔이었다. 어떤 슬픔이었던가? ‘당신이 세상을 떠나서 가슴이 아프다’는 종류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이렇게 가버리다니! 제대로 단죄하지도 못했는데!’하는 심정에서 나오는 통한이었다. 
 
2021년 11월 23일, 전두환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91세. 그는 쿠데타로 정권을 가로챈 ‘도둑’이었다. 제멋대로 정한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전임 대통령’이었다. 저지른 일에 대한 죄값으로 달랑 2년간의 수감 생활을 한 뒤 풀려 나온 ‘죄인’이었다. 재임 기간 거두어들인 검은 돈으로 풍요롭게 살다 간 ‘부자’였다. 
 
사망하던 날의 풍경이 너무나 기이하게 다가왔다. 그는 퇴임한 뒤 3~4년 만에 사망한 것이 아니었다. 무려 33년을 살다 사망했다. 쿠데타 주역들과 값비싼 만찬을 즐기고 골프를 치러 다니며 폼 나게 30여 년을 보냈다. 풍요롭게 이어지던 그의 33년 여생 동안 가만히 있었으면서, 이제 와서 슬퍼한다고? 그를 단죄하지 못하게 되었음에 통한을 느낀다고? 살아 있는 상태의 죄인을 단죄하지 못하게 된 상황에 대한 사람들의 통한이, 내게도 강력하게 서렸던 그 감정이, 참으로 기이한 이미지로 맺혔다. 
 
 📌 대한민국은 어떤 국가인가? 
 
국가란 무엇인가? 합법적 폭력 사용을 허가 받았다고 주장하는 유일한 단체다. 개인 간 갈등이 생겼을 때 서로 사적인 단죄를 주고받으면 폭력이 순식간에 증폭할 것을 염려해, 여럿이 모여 공평하게 죄값만큼의 폭력만을 돌려주기로 약속해 만든 집단이다. 잘못한 사람이 구성원들이 합의한 규범에 의해 마땅한 죄값을 치르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며 존재 이유라는 말이다. 전두환은 쿠데타와 광주민주화 운동, 삼청교육대 등 숱한 사건을 통해 시민을 살상한 중범죄자다. 국가가 반드시 해야 할 단 한 가지 일이 있다면 이런 인물에게 마땅한 형벌을 내리는 것이리라. 그러나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그 일을 하는데 실패했다. 
 
대한민국은 선거에 의해 두 번 이상 정권 교체를 이룬 ‘민주주의’ 국가이다. 법치주의를 표방하는 ‘근대국가’이다. 그런데도 중범죄자를 처벌하지 못했다. 중범죄자가 이승을 떠나던 날, 나 또한 슬픔과 통한으로 어쩔 줄을 몰랐다.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수없이 뇌리에 새겨온 ‘권선징악’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장면을 목도하는 데서 오는 환멸이었다. 
 
 📌 전두환은 왜 무릎 꿇지 않았는가? 
  
전두환은 진정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데 대해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을까? 그게 가능한가? 어쨌거나 그도 인간인데? 감정이 있고 사고를 하는 인간이, 자신처럼 인간의 얼굴을 한 생명체들을 죽음에 이르도록 한 데 대해 회한을 느끼지 않는 게 가능한가? 우리 사회는 왜 그를 무릎 꿇게 하지 못했는가? 의문이 끓어올랐다.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을 쓰는 것은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첫 여정이었다. 
 
 📌 영화 <서울의 봄>을 보다 
 
죄인을 단죄하지 못하는 데 대해 무심해진 동토에, 민주사회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곳곳에서 민주주의 정신을 위배하는 일이 일어나는 데 대해 경각심을 잃은 한국 사회에, 온기와 빛을 몰고 온 의미심장한 영상물이다. 영화 <서울의 봄>을 만든 김성수 감독은 1979년 12월 12일이라는 역사적 하루를 ‘사나이들 간 대결’로 선명하게 형상화했다. ‘우리가 독재자와 싸워 민주화를 쟁취했다’고 가르치듯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던 부모 세대에게 불공정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으로 맞섰던 젊은 세대가, <서울의 봄>이라는 강력한 이야기에는 뜨겁게 반응하고 있다. 이 흥미로운 현상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한다. 역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직설적인 훈계’가 아니라 ‘보여주기를 통한 이야기’로구나! 살아 움직이는 사람의 형상을 통해 보편적인 인간의 정서를 보여주는 ‘이야기’는 언제나 힘이 세다. 
 
제대로 규명되고 단죄 받지 못한 악은 그 악이 담긴 육신이 소멸한 이후에도 살아남는다. 생전만큼, 아니 생전보다 더 거세게 영향력을 발휘한다. 전두환 팬클럽의 생성, 광주 민주화 운동이 간첩들의 소행이었다는 거짓 소문, 특정 지역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제대로 단죄 받지 않은 악이 죽음 이후 우리 사회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또렷하게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전두환의 육신은 갔지만 우리는 아직 그를 보내지 못했다. <서울의 봄>이 내딛은 한 걸음이 죄인을 역사의 제 자리로 돌려보내는 강력한 해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2023년 12월 18일부터 12월 20일(수요일) 23시 59분까지,
현대사, 전두환, 서울의 봄, 논픽션, 소설, 창작 등
정아은 소설가에게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3일간 좋은 질문을 해주신 3명을 선정해 5000 포인트를 드립니다.
(발표 = 12월 19일~12월 21일까지, 매일 오전 9시)
 
 
2013년 장편소설 『모던하트』로 제18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잠실동 사람들』, 『맨얼굴의 사랑』,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에세이 『엄마의 독서』,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높은 자존감의 사랑법』,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논픽션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을 썼다.
8
팔로워 34
팔로잉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