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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는 왜 전두환 책을 썼나?
2023/12/18
장편소설 5권, 인문 에세이 3권을 출간한 정아은 소설가가 ‘전두환 책’을 쓴다고 했을 때, 동료 작가들은 무척 놀랐다. 왜 하필 현대사? 왜 전두환? 정아은은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에서 전두환이란 인물의 태생부터 죽음까지를, 그의 집권 전후의 시간을, 나아가 그가 권좌에서 물러난 이후의 여생을 지금껏 나온 그 어떤 문헌보다도 철저히 복원했다. 영화 <서울의 봄>이 관객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받으며,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을 찾는 독자가 늘고 있다. 이 책은 전두환을 악마처럼 몰아붙이는 작업이 아니고, 영웅으로 미화하는 작업도 아니다. 대신 전두환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치열하게 규명하고, 그의 영광과 모순, 몰락, 그리고 그 인물을 탄생시킨 ‘악(惡)의 기원’을 대한민국의 현대사라는 지평 위에서 가감 없이 드러내려는 전기적인 작업이다.
📌 전두환이 세상을 떠난 날
단톡방이 몇 백 개의 메시지로 차올랐다. 친구 몇 명이 전화를 걸어왔다. 소식을 알리는 인터넷 기사에는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렸다. 사람들에게서 빠르고 격렬한 반응을 끌어내는 이 날의 풍경을 이루는 주된 정서는 슬픔이었다. 어떤 슬픔이었던가? ‘당신이 세상을 떠나서 가슴이 아프다’는 종류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이렇게 가버리다니! 제대로 단죄하지도 못했는데!’하는 심정에서 나오는 통한이었다.
2021년 11월 23일, 전두환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91세. 그는 쿠데타로 정권을 가로챈 ‘도둑’이었다. 제멋대로 정한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전임 대통령’이었다. 저지른 일에 대한 죄값으로 달랑 2년간의 수감 생활을 한 뒤 풀려 나온 ‘죄인’이었다. 재임 기간 거두어들인 검은 돈으로 풍요롭게 살다 간 ‘부자’였다.
사망하던 날의 풍경이 너무나 기이하게 다가왔다. 그는 퇴임한 뒤 3~4년 만에 사망한 것이 아니었다. 무려 33년을 살다 사망했다. 쿠데타 주역들과 값비싼 만찬을 즐기고 골프를 치러 다니며 폼 나게 30여 년을 보냈다. 풍요롭게 이어지던 그의 33년 여생 동안 가만히 있었으면서, 이제 와서 슬퍼한다고? 그를 단죄하지 못하게 되었음에 통한을 느낀다고? 살아 있는 상태의 죄인을 단죄하지 못하게 된 상황에 대한 사람들의 통한이, 내게도 강력하게 서렸던 그 감정이, 참으로 기이한 이미지로 맺혔다.
📌 대한민국은 어떤 국가인가?
국가란 무엇인가? 합법적 폭력 사용을 허가 받았다고 주장하는 유일한 단체다. 개인 간 갈등이 생겼을 때 서로 사적인 단죄를 주고받으면 폭력이 순식간에 증폭할 것을 염려해, 여럿이 모여 공평하게 죄값만큼의 폭력만을 돌려주기로 약속해 만든 집단이다. 잘못한 사람이 구성원들이 합의한 규범에 의해 마땅한 죄값을 치르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며 존재 이유라는 말이다. 전두환은 쿠데타와 광주민주화 운동, 삼청교육대 등 숱한 사건을 통해 시민을 살상한 중범죄자다. 국가가 반드시 해야 할 단 한 가지 일이 있다면 이런 인물에게 마땅한 형벌을 내리는 것이리라. 그러나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그 일을 하는데 실패했다.
대한민국은 선거에 의해 두 번 이상 정권 교체를 이룬 ‘민주주의’ 국가이다. 법치주의를 표방하는 ‘근대국가’이다. 그런데도 중범죄자를 처벌하지 못했다. 중범죄자가 이승을 떠나던 날, 나 또한 슬픔과 통한으로 어쩔 줄을 몰랐다.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수없이 뇌리에 새겨온 ‘권선징악’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장면을 목도하는 데서 오는 환멸이었다.
📌 전두환은 왜 무릎 꿇지 않았는가?
전두환은 진정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데 대해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을까? 그게 가능한가? 어쨌거나 그도 인간인데? 감정이 있고 사고를 하는 인간이, 자신처럼 인간의 얼굴을 한 생명체들을 죽음에 이르도록 한 데 대해 회한을 느끼지 않는 게 가능한가? 우리 사회는 왜 그를 무릎 꿇게 하지 못했는가? 의문이 끓어올랐다.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을 쓰는 것은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첫 여정이었다.
📌 영화 <서울의 봄>을 보다
죄인을 단죄하지 못하는 데 대해 무심해진 동토에, 민주사회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곳곳에서 민주주의 정신을 위배하는 일이 일어나는 데 대해 경각심을 잃은 한국 사회에, 온기와 빛을 몰고 온 의미심장한 영상물이다. 영화 <서울의 봄>을 만든 김성수 감독은 1979년 12월 12일이라는 역사적 하루를 ‘사나이들 간 대결’로 선명하게 형상화했다. ‘우리가 독재자와 싸워 민주화를 쟁취했다’고 가르치듯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던 부모 세대에게 불공정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으로 맞섰던 젊은 세대가, <서울의 봄>이라는 강력한 이야기에는 뜨겁게 반응하고 있다. 이 흥미로운 현상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한다. 역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직설적인 훈계’가 아니라 ‘보여주기를 통한 이야기’로구나! 살아 움직이는 사람의 형상을 통해 보편적인 인간의 정서를 보여주는 ‘이야기’는 언제나 힘이 세다.
제대로 규명되고 단죄 받지 못한 악은 그 악이 담긴 육신이 소멸한 이후에도 살아남는다. 생전만큼, 아니 생전보다 더 거세게 영향력을 발휘한다. 전두환 팬클럽의 생성, 광주 민주화 운동이 간첩들의 소행이었다는 거짓 소문, 특정 지역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제대로 단죄 받지 않은 악이 죽음 이후 우리 사회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또렷하게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전두환의 육신은 갔지만 우리는 아직 그를 보내지 못했다. <서울의 봄>이 내딛은 한 걸음이 죄인을 역사의 제 자리로 돌려보내는 강력한 해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2023년 12월 18일부터 12월 20일(수요일) 23시 59분까지,
현대사, 전두환, 서울의 봄, 논픽션, 소설, 창작 등
정아은 소설가에게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3일간 좋은 질문을 해주신 3명을 선정해 5000 포인트를 드립니다.
(발표 = 12월 19일~12월 21일까지, 매일 오전 9시)
2013년 장편소설 『모던하트』로 제18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잠실동 사람들』, 『맨얼굴의 사랑』,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에세이 『엄마의 독서』,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높은 자존감의 사랑법』,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논픽션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을 썼다.
12월 20일 선정된 질문자는 @cas12 님입니다.
5000 포인트는 12월 27일 지급됩니다.
참여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cas12 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80년대에 발을 담그기 위해 다량의 취재와 독서를 했습니다. 그리고 소설을 썼던 경험이 있어 논픽션을 쓸 때 인물에 이입하는 작업이 좀 더 수월했던 것 같습니다.
가장 어려운 건 나이 들어가는 뇌와의 싸움이었지요. 논픽션에는 논거를 대는 게 중요한데, 중년 뇌의 단기 기억력이 받쳐주지 않아 거의 사투를 벌이다시피 했습니다. 내가 그걸 어디서 읽었더라? 어디서 들었더라? 늘 생각하며 근거자료 찾아 삼만리였죠. 뇌가 조금이라도 젊을 때 논픽션 작업에 뛰어드시길 권합니다!
좋은 질문주셔서 감사합니다.
논픽션 작업에 관심이 많은 독자입니다. 취재를 별도로 하셨는지 책을 자료로 많이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소설과 에세이 논픽션을 모두 쓰시는데 이점이 있나요? 어떤 작업이
가장 어려운지도 궁금해요.
@노영식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말씀주신 대로 하는 게 옳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전두환은 전남 광주시 부근 담양군에 공수부대를 강원도 화천에서 이전히여 주둔시켰습니다. 주둔 명분이 없는데도 이어지는 여러 정부(문민정부 포함)에서 원상회복하지 않았습니다. 이전 비용 때문이었습니다. 지역 주민들에게는 지날날의 고통을 상기시키는 공수부대 존치였습니다. 광주 인근 담양의 공수부대는 상징적으로라도 해체하고 타 부대에 분산 수용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12월 19일 선정된 질문자는 @정도원 님입니다.
5000 포인트는 12월 27일 지급됩니다.
참여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정도원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영화에서 전두광과 이태신이 절대 악과 절대 선처럼 그려졌다는데 저도 동의합니다. 왜 아쉽게 느끼시는지도 알겠고요. 그런데 영화는 책과 다른 매체라는 데 중점을 두고 보면 또 감독이 왜 그렇게 만들었을지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손익분기점, 영화에 걸려 있는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 영화의 히트유무가 앞으로 한국영화 제작 양상에 끼칠 영향...을 생각하면 지금 나오는 영화들이 모두 뚜렷한 선악구도와 다소 단순하게 느껴지는 스토리로 무장하고 있는 현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작품 자체의 복합성 혹은 예술성에서는 아쉽지만, 사회에 미친 영향 혹은 효과 면에서 <서울의 봄>은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무심히 지나가버렸던 역사적 현상을 새롭게 돌아보고 인식하게 만들어줬다는 면에서요. 특히 젊은 세대가 그 시대에 대해 관심을 갖고 분노하게 만들었다는 데에서 의미를 찾고 싶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을 우리 사회 내부에 묻는 두번째 말씀에도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전두환이 등장해서 정권을 가로채고, 자의로 임기를 정해 끝까지 임기를 마치고, 퇴임해 풍요롭게 천수를 누리다 간 것은 어느 정도 우리 사회에 책임이 있지요. 인물이 사회를 만들기도 하지만, 사회가 인물을 배태하기도 하니까요.
전두환은 좋은 남편이자 아빠, 할아버지였고, 가까운 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벗이었습니다. 반면에 자신과 아무 관련이 없는 '진정한 타인'에게는 냉정하고 잔인한 인물이었죠. 자신과 연관되지 않은 인물을 서슴없이 타자화하고 희생시키는데 주저하지 않는, 매우 양면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전두환은 허겁지겁 근대를 받아들여야했던 한국 사회가 기본적인 복지나 윤리를 정립하지못한 채 모든 책임을 '가족'에게 전가하고, 한 인간이 태어나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들을 모두 가족들이 각개 단위로 획득하고 누리도록 만든 데서 생겨난 인간상이 비틀어져 극단화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나와 내 가족에게만 해당되지 않은다면 괜찮다, 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모습은 사실 2023년 현재에도 크게 낯설지 않지요. '가족'과 '국가' 사이에 공동체가 존재하는 것, 중간 단위의 결사체(지역 공동체, 종교 공동체, 취미 공동체 등등...)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좋은 질문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전두환의 마지막 33년> 책 너무 잘 읽고 있습니다. 영화 <서울의 봄> 여운이 너무 깊어서 뭐라도 더 읽거나 보고 싶었는데 이 책이 그 여운을 더 짙게 만들어줬습니다.
정아은 작가님은 <서울의 봄> 에서 전두환이 마치 '절대 악' 처럼 묘사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쉽지 않으셨나요? 전두환이 손녀에게 보냈다는 편지에서도 그런 입체적인 모습이 얼핏 나오는 것 같고,
저는 영화가 시대적 악인 (일종의 서사적 빌런으로서) 으로 묘사한 게 좋다고도 느꼈지만, 실제 우리 안에 있는 악에 대해서 성찰할 기회를 잘 만들어진 '악인' 캐릭터가 빼앗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들었었거든요. 실제로 제가 살면서 경험했던 악인들 중에는 채식주의자 (비건), 동물보호 단체 회원 같은 사람들이 있었던 게 떠오릅니다.
역사에 if 는 없다. 라는 말도 있지만.. 전두환 정권이 사라졌다면 1980년대의 모든 정치 문제가 사라졌을까요? 악마같은 인물이나 정권이 사라진다고 우리 내부의 악이나 문제가 모두 사라지는 걸까요? 민정당 같은 정당이 나오지 않았을까요..? 3당 합당, 하나회의 부상 같은 사건들이 모두 안 일어났을까요...?
오히려 이런 문제들을 만들고 야기한 근본적인 원인은 전두환을 위시한 하나회 세력이 아니라 한국사회 내부에 있는 건 아니었을까요..??
여기에 덧붙여
정아은 작가님이 생각하셨던 전두환의 입체적인 모습은 어떤 게 있으셨는지 (손녀의 편지 이야기가 좋은 예시이기도 하지만) 궁금합니다 !
@popo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1. 전두환의 가장 큰 공은 87년 6월 항쟁 당시 직선제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두환은 군대를 동원해 진압하려다가 마지막 순간에 미 대사를 통해 레이건의 친서를 건네받고 군 동원 결정을 철회합니다. 그리고 직선제를 수용하는데요. 저는 이것이 전두환 특유의 '특별한 가벼움'에서 기인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나 직선제를 진심으로 받아들여서 한 선택이 아니라, 미국이 군대를 동원해 시민을 살상하면 안 된다고 엄포를 놓는 상황에서 아, 군대를 동원해봤자 안되겠구나, 단순하게 생각하고 수용한 것이지요. 전두환 특유의 깊게 생각하지 않고 실행에 옮기는 성향 덕에, 킬링필드와 같은 살육전이 벌어지지 않고 대한민국이 민주화 국면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고 봅니다. 요약하자면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으나,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성향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대한민국이 평화롭게 민주화 국면에 접어들도록 공헌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2. 임기를 채우며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기정사실화되어버렸다는 게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조선이 100여년에 걸쳐서 길게 망해가고, 그 이후 식민통치와 분단, 전쟁, 쿠데타 등의 변란을 거치면서, 한반도 주민들은 '근대화'라 불리는 일련의 과정들(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양 뼈대로 요약될 수 있는)을 변칙적으로 허겁지겁 받아안아야 했지요. 전두환의 공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근대화'에 방점을 두는 것이 아닐까요. 전두환 체제가 기정사실화되어갈 수록 근대화 루트가 단 하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이게 되었을 것이고, 그것이 전두환의 지위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어주었을 겁니다. 근대화해야 한다는 절실성, 즉 어떻게든 먹고 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당위에 초점을 맞추느라 그 당위를 실현하는 매개물인 '전두환'이라는 불법적 지도자의 윤리성에는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던 것이지요.
3. 많지는 않지만 존재하지 않을까요. 광주 시민이라 해서 모두 같은 입장과 시선을 갖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소수라 해도 그런 분들이 존재한다면 ,아마 그것은 제가 위에서 말씀드렸던 '근대화'에 대한 열망, 혹은 그 사람이 처한 사회적 지위 혹은 성장 환경 같은 요인들이 중층적으로 작용한 결과가 아닐까 추정해 봅니다.
좋은 질문주셔서 감사합니다!
전두환의 공이 하나도 없지는 않겠습니다만 경제호황은 전두환의 공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1. 작가님이 생각하시기에 전두환의 가장 큰 공은 무엇인가요?
2. 전두환의 공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엇일까요?
3. 광주에도 전두환의 공을 치하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나요?
@정도원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영화에서 전두광과 이태신이 절대 악과 절대 선처럼 그려졌다는데 저도 동의합니다. 왜 아쉽게 느끼시는지도 알겠고요. 그런데 영화는 책과 다른 매체라는 데 중점을 두고 보면 또 감독이 왜 그렇게 만들었을지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손익분기점, 영화에 걸려 있는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 영화의 히트유무가 앞으로 한국영화 제작 양상에 끼칠 영향...을 생각하면 지금 나오는 영화들이 모두 뚜렷한 선악구도와 다소 단순하게 느껴지는 스토리로 무장하고 있는 현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작품 자체의 복합성 혹은 예술성에서는 아쉽지만, 사회에 미친 영향 혹은 효과 면에서 <서울의 봄>은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무심히 지나가버렸던 역사적 현상을 새롭게 돌아보고 인식하게 만들어줬다는 면에서요. 특히 젊은 세대가 그 시대에 대해 관심을 갖고 분노하게 만들었다는 데에서 의미를 찾고 싶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을 우리 사회 내부에 묻는 두번째 말씀에도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전두환이 등장해서 정권을 가로채고, 자의로 임기를 정해 끝까지 임기를 마치고, 퇴임해 풍요롭게 천수를 누리다 간 것은 어느 정도 우리 사회에 책임이 있지요. 인물이 사회를 만들기도 하지만, 사회가 인물을 배태하기도 하니까요.
전두환은 좋은 남편이자 아빠, 할아버지였고, 가까운 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벗이었습니다. 반면에 자신과 아무 관련이 없는 '진정한 타인'에게는 냉정하고 잔인한 인물이었죠. 자신과 연관되지 않은 인물을 서슴없이 타자화하고 희생시키는데 주저하지 않는, 매우 양면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전두환은 허겁지겁 근대를 받아들여야했던 한국 사회가 기본적인 복지나 윤리를 정립하지못한 채 모든 책임을 '가족'에게 전가하고, 한 인간이 태어나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들을 모두 가족들이 각개 단위로 획득하고 누리도록 만든 데서 생겨난 인간상이 비틀어져 극단화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나와 내 가족에게만 해당되지 않은다면 괜찮다, 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모습은 사실 2023년 현재에도 크게 낯설지 않지요. '가족'과 '국가' 사이에 공동체가 존재하는 것, 중간 단위의 결사체(지역 공동체, 종교 공동체, 취미 공동체 등등...)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좋은 질문 주셔서 감사합니다~
@popo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1. 전두환의 가장 큰 공은 87년 6월 항쟁 당시 직선제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두환은 군대를 동원해 진압하려다가 마지막 순간에 미 대사를 통해 레이건의 친서를 건네받고 군 동원 결정을 철회합니다. 그리고 직선제를 수용하는데요. 저는 이것이 전두환 특유의 '특별한 가벼움'에서 기인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나 직선제를 진심으로 받아들여서 한 선택이 아니라, 미국이 군대를 동원해 시민을 살상하면 안 된다고 엄포를 놓는 상황에서 아, 군대를 동원해봤자 안되겠구나, 단순하게 생각하고 수용한 것이지요. 전두환 특유의 깊게 생각하지 않고 실행에 옮기는 성향 덕에, 킬링필드와 같은 살육전이 벌어지지 않고 대한민국이 민주화 국면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고 봅니다. 요약하자면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으나,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성향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대한민국이 평화롭게 민주화 국면에 접어들도록 공헌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2. 임기를 채우며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기정사실화되어버렸다는 게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조선이 100여년에 걸쳐서 길게 망해가고, 그 이후 식민통치와 분단, 전쟁, 쿠데타 등의 변란을 거치면서, 한반도 주민들은 '근대화'라 불리는 일련의 과정들(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양 뼈대로 요약될 수 있는)을 변칙적으로 허겁지겁 받아안아야 했지요. 전두환의 공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근대화'에 방점을 두는 것이 아닐까요. 전두환 체제가 기정사실화되어갈 수록 근대화 루트가 단 하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이게 되었을 것이고, 그것이 전두환의 지위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어주었을 겁니다. 근대화해야 한다는 절실성, 즉 어떻게든 먹고 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당위에 초점을 맞추느라 그 당위를 실현하는 매개물인 '전두환'이라는 불법적 지도자의 윤리성에는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던 것이지요.
3. 많지는 않지만 존재하지 않을까요. 광주 시민이라 해서 모두 같은 입장과 시선을 갖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소수라 해도 그런 분들이 존재한다면 ,아마 그것은 제가 위에서 말씀드렸던 '근대화'에 대한 열망, 혹은 그 사람이 처한 사회적 지위 혹은 성장 환경 같은 요인들이 중층적으로 작용한 결과가 아닐까 추정해 봅니다.
좋은 질문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순자 이야기가 재밌었어요. 여성작가의 힘이 보였다고 할까요? 논픽션 후속도 쓰실 계획이 있으신지 알려주세요
@QOQO98 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충격적인 내용이 많았지만 그 중 가장 강력한 것은 수감 생활 중이던 전두환이 손녀에게 보냈다는 편지 내용이었습니다. "이 할아버지는 네가 태어나기 전 용감하고 정의로운 일을 했단다. 그런데 16년이 지난 지금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네 생일도 축하해줄 수 없는 곳에 와 있다...잘 모르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놀리며 화내거나 싸우지 말고 우리 할아버지는 나라가 어려울 때 최선을 다해 훌륭한 대통령이었고 어린이를 몹시 사랑한 대통령이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해다오" 이런 내용이었죠. 이 내용 앞에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고, 이런 편지를 손녀에게 보내는 이의 정신세계가 너무나 궁금해졌습니다. 좋은 질문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지금은 어떤 책을 집필하고 계신지요? 소설과 에세이, 논픽션까지 여러 작업을 꾸준히 하고 계시는데요. 작업마다 글쓰는 특성이 다를 것 같아서요. 각각의 분야를 넘나들며 쓸 때(작업이 다 다를 것 같아서요)의 어려움과 즐거움은 무엇인가요? 쓰고 계신 원고 말고도 최근에 어떤 인물이나 주제에 관심을 갖고 이후 작업을 위해 준비하고 계신지도 궁금합니다. 마지막으로, 작가님의 글쓰기 루틴도 궁금합니다.
@노영식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말씀주신 대로 하는 게 옳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전두환은 전남 광주시 부근 담양군에 공수부대를 강원도 화천에서 이전히여 주둔시켰습니다. 주둔 명분이 없는데도 이어지는 여러 정부(문민정부 포함)에서 원상회복하지 않았습니다. 이전 비용 때문이었습니다. 지역 주민들에게는 지날날의 고통을 상기시키는 공수부대 존치였습니다. 광주 인근 담양의 공수부대는 상징적으로라도 해체하고 타 부대에 분산 수용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리사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후세에 길이 남을 좋은 책'이라니, 아, 작가에게 이보다 더 용기를 주는 말은 없을 것입니다. 감사드립니다!
전두환에게 대한민국은 그저 자기 야망을 실현하는 시공간이었겠지요. 자기 인생에 어떻게 이롭게 이용할 수 있을지, 대단히 기능적이고 실리적인 관점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기회의 땅'을 바라보았을 것 같습니다. 가장 화나는 건 끝까지 무릎 꿇지 않았다는 점이었지요. 특히 '광주는 하나의 폭동이야' 운운하는 영상을 볼 때는 숨이 턱 막혔습니다. 우리 사회가 그를 제대로 단죄하지 못한 후과이지요. 좋은 질문 감사드립니다.
@코코민주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이순자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니 너무 기쁩니다! 안 그래도 현대사 여성인물 중 하나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논픽션으로 도전해보고 싶은데, 아직은 구상 단계이고요. 이것저것 써보고 싶은 게 많아서(그런 게 마음 속에 몇 십 개쯤 있습니다. 마음 속으로는 무엇인들 다 못쓰겠어요~~~^^)아직 구체적으로 확정하고 덤벼들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언젠가 현대사 속 여성에 대해서 꼭 써보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있습니다. 좋은 질문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 후세에 길이 남을 좋은 책을 발간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희망이 없다고 하였는데 제2의 전두환이 나오지 않게 모든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뼈아픈 역사를 바르고 정확하게 인식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전두환에게 대한민국은 무엇이었을까요? 정말로 궁금합니다. 얼마나 국민들을 우습게 보았으면 마지막까지 반성과 사죄 한마디 하지 않고 떠나가 버릴까요? 작가님을 가장 화나게 했던 전두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작가님의 노고와 용기에 박수를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