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에 무릎 꿇다 4] 읽을 때마다 달라지는 책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2024/03/28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처음 읽던 십대 때는 온통 레트 버틀러만 눈에 들어왔다. 세상에 이렇게 멋진 남자가! 잘 생기고, 능력 있고, 시대 상황을 꿰뚫는 지성에, 섬세한 감성까지. 이성에 대해 한창 관심이 일던 때, 현실 속 또래 남자애들이 모두 여드름 송송 난 철딱서니로 보이던 때, 레트 버틀러는 십대 소녀의 허황된 환상과 허영심을 원 없이 채워주었다. 주인공인 스칼렛이나 멜라니, 애쉴리는 레트를 빛나게 해주기 위한 조연들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특히 스칼렛 오하라라는 인물은 터무니없는 바보로 여겨졌다. 자기가 누굴 사랑하는지 그렇게 오랫동안 모를 수가 있나? 극적인 효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작가가 억지스런 캐릭터를 설정했구먼!
작품을 두 번째 읽던 이십 대 때,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가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대학을 마치고 막 사회에 나가 ‘다소곳하면서도 섹시하고, 조신하면서도 애교가 넘쳐야 한다’는 정언명령을 받던 때였다. 어디에서나 환대 받았지만, 한 편으로는 무시 받는 것 같은 이중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것이 나라는 인간을 외모와 젊음으로만 보고 한 명의 온전한 성인으로 대해주지 않는 데서 오는 소외감이라는 것을 몰랐던 때이므로, 나는 도대체 이 사회가 나를 좋아하는 건지 싫어하는 건지 감을 잡지 못했다. 어떨 땐 나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왜 어떨 땐 엄청나게 무시하는 것 같지? 그런 시기에 스칼렛이라는 강인한 여성의 일대기를 따라가는 것은 커다란 위안이었다. 강하고, 일관되고, 자기 이익과 관련된 것 외에는 시선 한 번 주지 않는 ‘깡다구’가 굉장해보였다. 내게 쏟아지는 사회적 압력,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차를 대접하라거나, 기분을 살펴주라거나, 친절하게 웃어주라는 압력이 가장 강했던 때였기에 그랬을 것이다. 오직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며 사는 여성의 모습을 보며 받았던 쾌감. 만족감. 그것은 문학작품을 통한 대리만족이었다. 현실에서...
2013년 장편소설 『모던하트』로 제18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잠실동 사람들』, 『맨얼굴의 사랑』,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에세이 『엄마의 독서』,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높은 자존감의 사랑법』,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논픽션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