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에 무릎 꿇다 3] 거대한 이야기 창고를 여는 문 -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2024/03/28
사람들을 역사라는 거대한 이야기 창고로 끌어들이는 인물들이 있다.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청의 마지막 황제 푸이 같은 이들이다. 국내 인물로는 장희빈, 사도세자, 소현세자를 들 수 있겠다. 드라마와 영화의 단골소재가 되는 이들의 공통점은 ‘변신’이다. 이들은 인생의 어느 순간에 커다란 변화를 맞았고, 그 변화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대응했다. 고귀했던 신분에서 죄인 혹은 천민으로 추락하는 운명을 맞았던 이들은 역사에 뚜렷한 족적과 영원히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를 남겼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을 통해 죽은 자들과 교감하고, 사고의 시공간을 넓히며, 축적된 지혜의 보고를 받아 안는다.
내게 역사라는 역동적이고 흥미로운 우주로 들어가도록 관문 역할을 해준 인물은 마리 앙투아네트였다. 이 인물과 처음 마주친 것은 막 중학생이 되었을 때였다. ‘읽어도 되는’ 책의 종류가 갑자기 확 늘어났던 시기, 홍수처럼 읽을 거리들이 밀려들었고, 나는 그 중 ‘파름문고’라는 시리즈에 빠져들었다.
그 시리즈에는 그 전에 접했던 책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온갖 러브 스토리들이 다 들어 있었다. 그 덕에 나는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어렴풋이 알지만 구체적으로는 알지 못했던, 그렇기에 너무나 궁금했던 ‘성’의 세계를 구석구석 탐험할 수 있었다. 그 시리즈는 낭만적이고 은근한 방식으로 연애사를 풀어가서, 노골적인 묘사가 나오는 ‘하이틴 로맨스’를 읽을 때처럼 죄책감을 품을 필요 없이 마음 편히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80권이 넘어가던 그 시리즈물 중 세 권을 차지하는 장편소설 『베르사유의 장미』의 등장 인물이었다.
그 소설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을 때 마음에 일어났던 일을 지금도 기억한다. 밤이었고, 부모님 몰래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도저히 덮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프랑스 혁명이라는 인류사의 어마어마...
2013년 장편소설 『모던하트』로 제18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잠실동 사람들』, 『맨얼굴의 사랑』,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에세이 『엄마의 독서』,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높은 자존감의 사랑법』,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논픽션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