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경훈
작가 겸 의사
몇 권의 메디컬에세이를 쓴 작가 겸 의사입니다. 쓸데없이 딴지걸고 독설을 퍼붓는 취미가 있습니다. <응급실의 소크라테스>,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 <반항하는 의사들>, <날마다 응급실>, <의사 노빈손과 위기일발 응급의료센터> 등의 책을 냈습니다.
통속성과 도시적 삶 - 이태준, 『법은 그렇지만』
패튼이 군복을 벗을 뻔 했던 이유
[소감] '인간의 얼굴을 한 좌파'를 위해
식민지의 추억 - 한 문화인의 윤색된 회고와 왜곡된 사실
[선정 후기]같이 일어서고 싶은 마음이 전달됐으면
사회변혁과 여성해방의 신호탄, 여성 단발
촌극 빚은 문화인 등록 사업(1962) - 문화예술계에 대한 국가 통제와 그 저항의 단면
촌극 빚은 문화인 등록 사업(1962) - 문화예술계에 대한 국가 통제와 그 저항의 단면
촌극 빚은 문화인 등록 사업(1962) - 문화예술계에 대한 국가 통제와 그 저항의 단면
1962년의 ‘문화인 등록’ 사업은 결국 제한된 정규 등록 기간에 세 명 등록이라는 초라한 결과만을 가져왔다. 이때 최종 등록한 세 명 중 한 명이 바로 “소설가 정연규”였다. 문화인 등록이 무참하게 끝나고 나자 등록 첫날 등록용지를 문화과에서 받아간 것으로 보도된 김동리와 김환기 등은 “그런 사실이 없는데 어떻게 된 일이냐?”는 반박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문화과 담당관은 “두 분이 다 우리 서울문화위원이기 때문에 잘 알고 있으며 모두 대리인이 용지를 가져갔다. 우리도 본인들이 직접 오리라고 생각지는 않았다”고 해명하는 등 ‘문화인 등록’과 관련한 촌극은 계속됐다.
문화․예술인들이 1962년의 ‘문화인 등록’에 이처럼 부정적이었던 까닭에는 몇 가지 사정이 있었다. 일단 표면적으로는 정부가 문화․예술인을 관리하고 통제하려는 것에 대한 생래적인 반발이 있었을 터였고, 간...
윤동주의 말하지 못한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