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혁현 · 오래된 활자 중독자...
2024/06/03
90학번 후배가 있다. 그를 몰랐다면 아래의 설정을 그저 소설적 상상력의 일환이라 치부했을 것이다. 후배는 글을 쓰고 싶어 했고 (발표 여부와 상관없이) 글을 썼다. 마지막으로 나를 찾아왔을 때 후배는 말했다, 형 저는 글을 쓰고 있으므로 작가예요. 시간이 흘러 그가 난독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다른 후배로부터 들었다. 어느 날 꿈에 후배가 나타났다. 나는 몇몇 후배를 거치는 수소문 끝에 후배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의사는 희귀한 경우이지만 의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했다. 인간의 뇌는 모국어와 외국어를 각기 다른 영역에서 관장한다. 한주는 의식이 돌아오며 모국어를 담당하는 부분이 열리지 않았다. 다만 남겨진 건 일본어였다...” (p.25)
밤의 꿈을 이야기하며 걱정을 드러냈다. 내가 앞서 난독증인 후배의 상황을 꺼내지 못하고 있는 참에 후배가 먼저 내게 나아진 상황이 있다고 알려왔다. 자신이 어떤 글도 읽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여전하지만 얼마전 영어로 된 텍스트는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영어로 된 뉴스를 통해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찾아본다고 했다. 다행히 후배의 전공은 영문학이었다. 다행스럽지 못한 것은 후배는 집밖 출입을 하지 않는 부류의 인간이 되어 있었다.
“자, 내 이름은 유키노, 태어난 곳은 미타 공업지구, 어린 시절 살았던 곳은 오타루, 그곳에서 함께 살았던 사람은 어머니, 오타루를 떠나 살았던 곳은 도쿄, 그곳 도쿄에서 함께 살았던 사람은 한주, 한주가 태어난 곳은 서울, 한주가 죽었던 장소는 부산 호텔의 어느 욕조 안. 특이사항은... ...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책/영화/음악/아내/고양이용이/고양이들녘/고양이들풀/Spitz/Uaral/이탈로칼비노/박상륭/줌파라히리/파스칼키냐르/제임스설터/찰스부코스키/기타등등을 사랑... 그리고 운동을 합니다.
77
팔로워 4
팔로잉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