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冊너무 시끄러운 고독] 실존은 곧 생존이다

강현수
강현수 · 영화와 冊.
2024/05/18
1980. 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

어느 다독가는 안 동의할지 모르겠지만 독특한 책이다. 35년 간 폐지 압축 노동을 해온 노동자 한탸의 이야기.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연상케 하는 익숙한 플롯이다. 연대기적 플롯을 따라 크고 작은 일들이 얽혀 있는 식이다.

35년 동안 한탸 개인뿐만 아니라 체코에서도 참 많은 일이 일어난다. 나찌의 지배와 해방 이후의 공산화. 그러나 작가와 달리 한탸는 정치에 큰 관심은 없어 보인다(?). 그는 쥐와 파리가 들꿇는 어두운 지하 공간 책들을 소멸하는 압축기 주변에서 큰 벗어남이 없다. 무려 35년 동안. 고독한 공간에서 쥐와 파리는 그의 친구이며 적이기도 하다. 한 사람이 오롯이 담긴 책들은 도살장의 닭들처럼 압축기 벨트를 따라 소멸을 향해 나아간다. 하나의 정신 소멸 과정에서 구원의 손을 내미는 건 다름 아닌 ‘게으른’ 한탸. 그는 일을 하면서도 오늘은 어떤 책을 건질지 마음이 설레어 일처리가 늦는다. 한탸가 압축 일을 35년 동안 할 수 있는 비결이자 관리자가 한탸를 닦달하는 이유다. 한탸는 압축 일을 좋아한다. 그는 다시 태어나도 이 일을 계속 하리라 다짐한다.

한탸는 예수와 노자, 칸트, 니체, 헤겔, 쇼펜하우어의 정신이 담긴 더러운 책들을 선별해낸다. (일종의 의식구인) 술에 취한 한탸는 제사장으로서, 저승으로 가는 길목을 지키는 저승사자로서 위대한 책들을 구해내 그 속에 담긴 정신으로 스스로 구원받는다. 예수와 노자의 영혼은 술에 취한 한탸의 눈앞에 나타나 불꽃처럼 어른거린다. 둘은 대립과 균형의 세계를 보여주며 한탸를 환희의 세계로 안내한다.

어려웠다. 낯선 이름과 지명 따위가 난독을 부추겼고 문장 또는 문단들이 인과관계보다 수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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