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최전선> : “왜”라고 묻고 “느낌”이 쓰게 하라 by 은유

신승아
신승아 · 삐딱하고 멜랑콜리한 지구별 시민
2023/09/13

나는 수십 가지 꿈을 꾸던 아이였다. 의사, 변호사, 가수, 사업가, 기자 등 돈과 명예를 가진 직업이면 무엇이든 좋았다. 어떻게든 화려한 직종에 속해 고통으로 점철된 과거를 보상받고 싶었다. 보통 1년 주기로 꿈을 바꿔가며 마음껏 환상의 세계를 떠돌았다. 삶은 하잘것없는데 이상만 높아서 불행한 아이가 바로 나였다. 직업을 꿈의 동의어로 착각했던 시절,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일이 있었다. 다름 아닌 작가다. 글 속에 침잠되어 시스템 가장자리에 위태롭게 서 있는 일은 지독히도 쓸쓸해 보였다. 나는 그들처럼 똑똑하고 강단 있는 타입이 아니라서 내면의 치열함을 견디며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제법 아가씨 태를 갖췄으나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 티를 벗지 못한 스물둘. 어둠이 내리면 안도하며 잠들었고, 해가 밝아 오면 고통과 함께 눈을 떴다. 깨지 않길 바랐지만, 신께서는 어김없이 하루를 부여했다. 한참 방황하며 허송세월 보냈을 무렵, 책상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노트 한 권이 눈에 띄었다. 읽고 본 것들을 생각나는 대로 끄적인 감상문 뭉터기였다. 잃을 것은 없었고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응축된 말들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 되어서야 결단을 내렸다. 데스크톱 전원 버튼을 누르고 블로그에 접속해 한 글자씩 타이핑했다. 2014년 10월 9일, 첫 포스트를 발행하고 온라인 귀퉁이 한 공간의 주인이 된 날을 기점으로, 인생 서막이 열렸다. 

블로그에는 등단하지 않은 게 의문스러울 만큼 탄탄한 필력을 가진 분들이 많았다. 그분들과 인연을 맺고, 매일 업데이트되는 글을 읽고, 의견을 나누며 시야를 넓혀갔다. 예상대로 글쓰기는 품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었다. 공부한 내용을 정리하고, 느낌을 적확하게 번역하여 독자들에게 전달해야 했다. 혈기왕성한 열정과 의지는 가득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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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페미니스트, 비건 지향인, 천주교 신자, 그리고 그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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