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용
김지용 인증된 계정 · 어쩌다 정신과 의사입니다.
2024/04/01
오늘도 진료실에서 반복 강박의 심리에 붙잡혀 긴 세월을 지내온 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그들 마음 속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실타래는 반복 강박 단 하나로만 얽혀 있는 것은 아니다.

20대 초반 여성 A씨는 가정폭력을 일삼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성인이 된 그녀는 매번 나이 차이가 꽤 나는 연상의 남자들만 만났다. 그들은 한결같이 그녀를 강하게 억압했고, 심지어 폭력으로 이어지기까지 했다.
30대 중반 남성 B씨는 급작스러운 건강 악화 때문에 첫 연인으로부터 버림받은 과거가 있었다. 그리고 이후 그의 삶에서 만난 여성들은, 관계가 깊어질 만하면 어김없이 그를 버리고 떠나갔다. 
 
이 둘 모두 그저 지독히도 운이 없는 사람들인 걸까? 그렇지 않다. 둘 모두 반복 강박에 사로 잡힌 상황이라 의심할 수 있다. 그런데 다음 질문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들의 연애 상대들은 어쩌면 그렇게 하나같이 비슷하게 행동했을까? 왜 그들의 상처를 안아준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을까? 반복 강박의 심리가 아무리 강력하다 해도, 어떻게 당사자가 아닌 타인들까지 통제할 수 있단 말인가? 
 
반복 강박과 함께 강력한 실타래를 구성하여 그 연인들 양쪽 모두를 옭아맨 심리의 정체는 ‘투사적 동일시’라는 녀석이다. 이 생소한 단어에 대해 상담학 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원하지 않는 자신의 일부분이나 원하지 않는 내부 대상을 분리시켜, 투사하고, 해를 입히고, 조정하고, 소유하고자 하는 심리적 기제’ 

음… 너무 어렵다. 투사적 동일시는 정신과 의사들에게도 어려운 개념이다. 조금 간단하게, 그리고 이 글의 목적에 맞춰 설명해보자면, A와 B의 삶에서 투사적 동일시는 반복 강박을 완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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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팟캐스트 채널 '뇌부자들'을 운영하고 있으며, '어쩌다 정신과 의사' 책의 저자입니다. 북팟캐스트 '서담서담'의 멤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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