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과 국가
2024/03/25
여자가 아이를 낳지 않으면 인류는 멸망한다. 하지만 인류가 멸망해야 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어차피 지구 자체의 종말은 예정되어 있다. 태양의 수명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또 예전에는 인간이 너무 많아지면 자멸할 것이라고 그랬다. 과거에 예측했던 수치보다 훨씬 빨리 인간은 늘어났지만 자멸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측하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인류의 숫자는 줄어들 수 있지만, 그 때문에 멸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말로 인류의 멸망을 걱정한다면 그것보다 걱정해야 할 것들이 많다.
나무위키에 의하면, 러시아에서는 1920년대에 수컷 침팬지와 인간 여성 사이에서 잉태가 가능한지 실험하려고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오늘날의 토테미즘’에는 이런 귀결 밖에는 없다.
<판의 미로>의 불편함은 어린 여자아이를 총으로 쏴서 죽이는 엔딩에 있지 않고, 죽어가는 여자아이가 주위의 통곡 속에서 짓는 웃음이 이해를 거절하는 데 있다. 마치 아이의 엄마가, 그리고 엄마의 역할을 대신해주었던 하녀가 아이가 말하는 동화의 세계를 거절했던 것처럼. 우리는 알고 있다. 아이가 마지막으로 본 환영, 그것은 그저 죽어가는 인간의 뇌에 비치는 헛된 망상의 이미지들일 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같은 방식으로, 아이가 보고, 경험하고, 살아가는 판의 미로 속 요정들의 세상 역시 환각이라고 말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아이에게 현실이며, 자신의 현실 속에서 아이는 판의 미로를 탈출하여 공주로 되돌아간다. 그래서 아이는 행복하게 웃는다. 배에 구멍이 뚫리고 피가 흐른다는 사실은 아마 전혀 중요하지 않을 것이고, 무엇보다 자신이 죽는다는 생각도 아이에게는 없다. 아이는 죽어가면서도 자신이 죽을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까맣게 모르고 있다. 그것이 바로 판의 세계이고, 아이들이 태어나는 한, 판의 세계는 언제나 우리 바로 곁에서 피를 흘리며 웃고 있으리라는 것.
판의 디자인은 매력적이었다. 다리는 말이나 염소의 다리다. 메피스토펠레스도 말발굽을 하고 있다. 기독교 이후 판도 악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