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떨어지는 자리 (1) ㅡ 디딘 땅이 사라지면

오아영
오아영 인증된 계정 · 갤러리 대표, 전시기획자, 예술감상자
2023/01/12

최근에, 누군가 물었다. 당신의 인생에서 돌이키고 싶은 것은 무엇이냐고. 말해 뭐해. 엄마지. 엄마를 살려낼 수만 있다면야. 라고 속으로 혼자 대답하다가 나는, 또다른 질문을 던져내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그럼 나 자신도 그때로 가야해? “하는 나를. 이어  “지금 내 존재의 모습 그대로 있고 여기서 엄마만 돌아오면 좋겠어” 하고 있는 나를. 엄마 살아돌아오는 얘기하고 있는데 지금 나 조건 걸고 앉았는 건가. 이런 스스로가 돌연 끔찍하게 감각되어 훅 떨떠름했다.

아. 인정하기 싫지만 그리고 인정하면서도 마음이 찜찜하지만 나는 인정을 해야했다. 내 인생에서 내게 주어진 가장 큰 선물은 엄마인데, 그중 엄마의 죽음은 그 선물의 정점을 이루는 피날레 였다고. 이 사실을 나는, 부인할 수가 없다.

장수지, <품에>,130.3 x 130.3cm, 장지에 혼합재료, 2022//엄마와 안고있는 모습을 그린 작품. 내게 그녀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한 존재의 정확한 사이즈는 존재의 헤아림을 통해서가 아니라 부재ㅡ 그 존재가 빠져나간 자리 ㅡ 를 통해서만 측정될 수 있다고. 엄마가 죽고나서 나는, 이제까지 내 고유의 독특한 기질인 줄만 알았던, 이상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현실로부터의 자유로움과 뭘 걱정하거나 무서워할 줄 모르고 대담함과 배짱을 부려대는 태도의 기저에 엄마의 아주 두텁고 짙은 사랑으로 만들어진 켜켜이 드높은 발판이 자리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됐다. 나자신 잘나 혼자 하늘에 살았던 게 아니라 엄마의 단단하고 짙고 두터운 사랑이 나 딛은 땅을 거기까지 올려줘서 나는 맘놓고 제약없이 소망할 수 있었던 거였다고. 엄마 사랑 위에서 나는 그렇게 혼자 잘난체를 하며 너울너울 이것저것 꿈꿀 수가 있었던 거였어. 이건 커다란 돈을 주거나 필요한 걸 해다주거나 말거나 같은 그런 현실적인 지원 얘기라기보다 순전히 사랑으로, 마음이지만 현실의 그 무엇도 다 이겨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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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아름다움. 이 둘만이 중요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삶의 이유이자 내용이자 목적이다. 실은 이들이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을 살게 만드는 절대적인 두가지라 믿는다. 인간은 제 영혼 한 켠에 고귀한 자리를 품고 있는 존엄한 존재라고 또한 믿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 보이지 않는 자리들을 손에 만져지도록 구체적으로 탁월하게 설명해내는 일로 내 남은 삶은 살아질 예정이다. 부디 나의 이 삶이 어떤 경로로든 나와 마주하는 사람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살아있게 만들 수 있다면.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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