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冊캉탕] "젊음이 지나간 자리에 지혜가 남아 있기를"
2024/08/15
책을 옆에 놓고 써야 하는 게 바람직하나, 두고 왔다. 기억에 의존해 쓰도록 하겠다. 기억은 과거에 있다. 과거의 힘은 막강하다. 시간은 과거의 편이며 과거는 미래를 갉아먹는다, 곰처럼 웅크린 채 잠복해 있다가 어느 순간 이빨을 드러내며 현재를 물어뜯는다. 따라서 과거는 극복의 대상이 아닌 회피의 대상이 되곤 한다. 나는 위대한 과거의 힘을 빌리도록 하겠다. 늘 그래왔듯이.
이명증으로 힘들어하는 한중수에게 주치의 J는 현실에서 벗어나 어딘가로 훌쩍 떠날 것을 권유한다. 한중수는 권유를 받아들여 캉탕이란 항구도시로 떠난다. 캉탕엔 축제 기간, 세워진 높은 돛대 위에서 ‘파다(제물)’로 선발된 이들이 뛰어내리는 의식이 있다. 이는, 저 옛날 거친 파도를 잠재우기 위해 인간을 제물로 바치던 데서 전해진 풍습이다. 이 도시에서 한중수는 J의 삼촌과 더불어 타나엘이라는 선교사도 만난다. 세 사람의 공통점은 너무 분명하다. 과거로부터 도망친 자들. 이들 모두 죄의식에 시달리고 있다. 한중수의 이명증은 사이렌 소리다. J가 지적했듯 그것은 일종의 경고음이다.
여기서부터는 위험 지역입니다!
과거를 삶의 중력이라 한다. 부끄럽고 아픈 상처가 켜켜이 쌓여 가만히 있어도 지탱하기 힘들어진다. 젊은 혈기로 극복할 수 있을 것만 같았지만 사실은 도피에 지나지 않았다. 내면의 괴물로부터. 니체는 괴물을 피하기 위해서였는지 모를 걸음을 매일 걸었다. 그보다 더 극적인 인물이 있다. 랭보는 평생 도망만 다녔다. 어느 심리학자는 그것을 도피에의 열정이라고 했다. 랭보는 죽기 하루 전날에도 도피를 꿈꿨다. 도피는 다음 날 임종에 이르러서야 끝이 났다. 우리는 도망치지 않을 수 있을까? 뱃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격언 중 하나는 이런 것이다.
항구가 보이면 미친듯이 도망쳐라!
소설에 따르면 뱃사람들의 항해는 그 자체로 도피다. 그런데 정착을 위해 만들어진 항구가 보이면 도망치라니, 역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