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가 쓰고 싶을 때 나는 라면물을 올린다5] 그들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안치용 인증된 계정 · 작가, 영화평론가, ESG 담당 교수
2024/05/07
그들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나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족속을 이해할 수가 없다. (...) 그런 인간을 상대하는 건 고통스러워. 
   
Sieh, ich kann das Menschengeschlecht nicht begreifen, das so wenig Sinn hat, um sich so platt zu prostituieren.(...) Das ist ein Leiden, mit so einem Menschen zu tun zu haben.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치부를 드러내다”로 번역한 독일어 ‘prostituieren’은 영어 ‘prostitute’에 해당하는 말이다. ‘prostitute’은 매춘부란 명사와 매춘하다는 동사의 뜻을 동시에 갖는다. 치부(恥部)가 “남에게 드러내고 싶지 아니한 부끄러운 부분”과 음부란 뜻을 겸하니 적절한 번역인 셈이다.

음부를 부끄러운 신체 부위로 인식하는 태도에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문자 그대로 음부를 드러내고 다니는 행태에 찬성하는 건 아니다. 치부는 아니지만, 문명사회의 도래와 함께 내려진 사적 기관이란 규정에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겠다고 타협했다. 타협하지 않는다면 어쩔 것인가. 고결하게 정신변동에서 홀로 존엄과 자유를 외치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 자유와 관련해서는 그것 말고 다른 시급한 일이 훨씬 많다.
   
어린 날의 부끄러운 기억
   
까칠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 성격이긴 하나, 남에게 해코지하며 살지는 않았다. 내가 모르는 해코지가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의도적으로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착해서가 아니라 새가슴이라서 그렇지 싶다. 남들도 그렇지 않을까. 

물론 살면서 부끄러운 순간이 왜 없으며, 이불킥을 하며 후회한 실수, 낯 뜨거운 비겁함이 왜 없었겠는가. 그것도 남들과 비슷한 수준에 머물렀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일일이 물어보지 않았으니 어쩌면 내 실수, 내 비겁, 내 창피가 더 클지 모르겠으나 그것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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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연구소장으로 (사)ESG코리아 철학대표, 청년협동조합지속가능바람 이사장으로 활동한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ㆍ국제영화비평가연맹 회원이고, 부산국제영화제 심사위원을 지냈다. 약 40권의 저역서가 있다.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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