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글을 곁에 두고

박순우(박현안)
박순우(박현안) · 쓰는 사람
2023/03/03
  오랜만에 여행을 떠나면서 가장 걱정했던 건 글이었다. 여행지에서 글을 못 쓰면 어쩌지. 매일 쓰기로 스스로와 약속했는데.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온 뒤 글을 쓰는 게 어색하면 어쩌지. 또 글이 잘 써지지 않아 버벅댄다면, 얼마나 또 써야 다시 물 흐르듯 쓸 수 있을까.

  생각을 하다 문득 나는 무엇을 위해 매일 글을 쓰는지 의문이 들었다. 매일 쓴 지 얼마나 되었다는
문구를 쓰기 위해? 나와의 약속이라서? 글을 쓰는 게 그저 좋아서? 부끄럽게도 생각 끝에 방점은 매일 써온 기간을 그저 늘리기 위함이었다는 데 찍히고 말았다.

  매일 쓴 지 18개월째다. 나는 이 하나의 문장을 쓰기 위해 매일 써왔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정말 나를 위한 일일까. 사실 처음에는 기간을 늘리는 데 신이 났다. 자신과의 약속에서 시작한 일이었고 꾸준히 무언가를 하는 걸 가장 힘들어하는 사람이 바로 나이기에, 기간이 늘어갈수록 내 안의 인내심이 늘어가는 것만 같아 기분이 달떴다.

  반면 점점 늘어가는 기간은 나 자신을 옭아매기도 했다. 이렇게 오래 써왔으니 이제 뭔가를 보여줘야 할 것만 같았다. 그동안 쓴 글을 한데 엮거나, 새로운 도전을 하거나. 매일 그 표현이 그 표현 같고, 했던 말을 또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질은 향상되지 않는데 양만 늘어나는 느낌. 내가 혹시 글자 쓰레기를 생산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나를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스스로 자처해 글 쓰기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가 있는 나를 끄집어내 잠시 바람을 쐬주자. 매일 쓰지 않아도 괜찮다. 하루 쓰지 않는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제자리로 돌아가 글이 써지지 않더라도 괜찮다. 꾸준히 쓰면 또 써지겠지. 여행만 즐기자. 오롯이 지금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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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씁니다.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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