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역사책을 찾아서 (9)
2023/07/30
한민족의 위대한 역사를 찾아 헤매던 사람들에게 <환단고기>가 준 충격은 매우 컸다. 그동안 온갖 중국 사서를 뒤져가며 공상의 나래를 펼치거나 양에 안 차는 <규원사화>나 누가 봐도 문제가 있는 <단기고사>를 가지고 우겨야했던 모든 문제를 <환단고기>가 해결해버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해온 작업에 대한 미련, 이런 책을 만들어낼 수 없었던 불만 등이 폭발하면서 이 책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아직 한글 번역본이 없어서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이 책을 알고 있을 때에는, 아마도 이 책을 저본으로 또 다른 위서를 만들고 싶었던 욕망들이 들끓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그런 사람 중에 황상기(黃相基)라는 사람이 있었다. 1914년생으로 1955년에 서울대 법대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자신의 책 <환국육천년사>(삼신각, 1981)에서 <환단고기>를 굳이 “<삼국유사>가 채용한 <환국고기(桓国古記)>”라고 쓰고 있다. <삼국유사>에는 그냥 ‘고기’라고만 나올 뿐이고, 제시한 원문 ‘昔有桓国 桓仁居于天山’이라는 말도 없다. 저 말은 <환단고기> ‘삼성기’ 하편에 나온다.
황상기가 <환국고기> 원문이라고 제시한 글은 ‘삼성기’ 하편을 다시 편집한 것이다. 그가 <환국고기>를 인용할 때마다 “<삼국유사>가 채용한 <환국고기>”라고 쓰는 것은 역으로 그가 얼마나 <환단고기>를 신경쓰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가 처음부터 이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다. 1980년 11월 8일 교육회관에서 강연할 때는 “안탐노 찬의 삼성기”(안함노의 함(含)을 탐(貪)으로 잘못 읽은 모양이다), “원동중 찬 삼성기”라고 그 이름을 밝혀놓았었다.(<환국역사개론>, 1984, 498~499쪽) 하지만 그 후 마음을 바꾼 것이다. 19...
그가 처음부터 이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다. 1980년 11월 8일 교육회관에서 강연할 때는 “안탐노 찬의 삼성기”(안함노의 함(含)을 탐(貪)으로 잘못 읽은 모양이다), “원동중 찬 삼성기”라고 그 이름을 밝혀놓았었다.(<환국역사개론>, 1984, 498~499쪽) 하지만 그 후 마음을 바꾼 것이다. 19...
<환국역사개론>은 631쪽의 벽돌책이다. 중간에 영어, 한문 부분이 섞여 있고 이야기도 앞에 한 이야기 뒤에 또 하는 등 중언부언인데다가 한자를 잘못 읽은 부분도 여러군데 보인다. 수미산의 경우 須彌山이라고 써야 하는데 彌를 일관되게 爾(이)로 잘못 쓰고 있다. 애초에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이런 책을 읽고 소개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는 왜 이 고역을 자처하고 있는 것일까? 이것이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기 때문에, 나는 그 단면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환단고기>라는 책이 어떻게 탄생하고, 그것이 어떤 영향을 어떻게 미쳤는지 이야기해놓아야 할 것이다. 서지학적으로 이런 작업을 해놓는 것이 아무 의미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