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 역할들 – 탤런트 최정훈의 명복을 빌며

김형민
김형민 인증된 계정 ·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
2023/05/12
기억 속 역할들 – 탤런트 최정훈의 명복을 빌며 
.
벤허부터 엘시드, 미드웨이 등등 스케일 큰 대작에서 주연을 꿰찼던 미남 배우 찰턴 헤스턴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엘시드랍시고 큰칼 차고 말 달리며 영화 찍다가 집에 돌아와서 하수구 막힌 거 뚫고 있으면 어느 쪽이 나인지 모르겠다.” 아닌게아니라 배우들은 그럴 것 같다. 대학 때 엉성한 노래극 중 어떤 배역을 맡아도 그 역할에 몰입했던 기억이 나는데 수백만이 보고 때로는 수천만도 보는 작품 속에서 특정한 롤을 맡는다는 것은 “내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인가, 나비가 꿈에 내가 된 것인가 알 수 없는” 장자(莊子)의 경지에 들어야 가능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
2023년 5월 10일 세상을 떠난 배우 고 최정훈도 그랬을 것 같다. 그는 KBS 탤런트 1기 출신이다. 1기가 뽑힌 것은 자그마치 1962년. 이 나라의 통치자가 박정희 ‘대통령’도 아니고 박정희 ‘장군’이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까마득한 배우들 같지만 의외로 낯익은 이름들도 눈에 띈다. 박병호, 태현실, 김혜자, 정혜선, 박주아 등등. 그야말로 우리 나라 대중문화의 산역사 같은 이름들인데 그 가운데 최정훈도 있었다. 
.
춘하추동방송


사실 나는 최정훈이 최고로 끗발 날리던 시절은 전혀 알지 못한다. 그의 평생 친구였던 배우 남일우, 이신재의 회고만 봐도 최정훈은 6~70년대 상상을 초월하는 스타였다. 동시에 6편의 작품에서 주연을 맡았다니 최정훈 아니면 배우 없었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응급차를 타고 비상등 켜고 촬영장을 누볐고 한달간 번 돈으로 집 한 채를 장만할 지경이었다니 말 다할 노릇. (2014년 7월 14일 KBS <여유만만>) 가히 요즘으로 치면 현빈과 공유를 합친 느낌이었으리라. 
.
내가 그를 TV에서 보기 시작한 것은 중년 이후의 모습이었다. 1940년생이니 우리 아버지보다 한 살 아래. 그러니 청춘의 조각 미남보다는 늙지는 않았어도 젊음은 면한, 주름살 그어지기 시작한, 하지만 ...
김형민
김형민 님이 만드는
차별화된 콘텐츠, 지금 바로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사학과는 나왔지만 역사 공부 깊이는 안한 하지만 역사 이야기 좋아하고 어줍잖은 글 쓰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입니다.
273
팔로워 3.4K
팔로잉 3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