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죽어가는 아버지를 지켜봐야 하는 딸

김성호
김성호 인증된 계정 · 좋은 사람 되기
2023/09/17
상실은 언제나 버겁다. 어떤 상실은 한 순간에 닥쳐오고, 또 다른 상실은 서서히 다가온다. 그중 무엇이 더 괴로운가를 따지는 건 무용한 일이다. 빠르든 늦든 모든 상실이 닥쳐오리란 것을 알 뿐이다.
 
어렸을 적엔 삶이 무엇을 얻어가는 과정이라 믿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삶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잃어가는 과정이다. 삶은 모든 것을 허락한 것처럼 굴다가도 아무렇지 않게 그 모두를 앗아간다. 그리하여 삶은 비정하다. T. S. 앨리엇이 4월을 잔인한 달이라 노래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나는 짐작한다. 만물이 태어나는 봄이란, 마침내 죽고 말 것들이 태어나는 때이므로.
 
나의 어머니는 퇴행성 질환을 앓고 있다. 파킨슨이라 불리는 이 병은 그 자신에게, 또 그를 지켜보는 이들에게 해소될 길 없는 고통을 안긴다. 완치를 기대할 수 없는 질병이란 인간을 무력하게 한다. 상실의 고통을 잘게 쪼개어서는 매일 한 움큼씩 건네주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내 어머니를 매일 조금씩 잃어간다. 나와 같은 고통을 당하는 이가 이 세상에 널려 있다는 건 조금의 위로도 되지 않는다. 그들 각자가 감내하고 있을 고통을 나는 멀찍이 서서 그저 짐작할 뿐이다.
 
▲ 영화 <어느 멋진 아침> 포스터 ⓒ 찬란

아버지를 매일 조금씩 잃어가는 딸

여기 비슷한 이가 있다. 산드라(레아 세이두 분)는 아버지를 매일 조금씩 잃어간다. 한때는 존경받는 철학교수였던 아버지(파스칼 그레고리 분)다. 세상 모든 것에 명확하게 다가서 구분하려 했던 명민한 아버지다. 그런 그가 이제는 제 딸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한다.

10년 넘게 앓아온 신경퇴행성 질환은 그에게서 시력을, 인지능력을, 다시 또 많은 것을 하나씩 앗아갔다. 하루 몇 번씩 들르는 것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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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서평가, 작가, 전직 기자, 3급 항해사. 저널리즘 에세이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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