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창

천세진
천세진 인증된 계정 · 문화비평가, 시인
2023/10/31
출처-픽사베이
    사진은 빛과 사물이 사람의 눈과 기계장치의 이중의 창을 통과한 순간의 기록이다. 어느 눈이 먼저였을까? 카메라의 눈이 먼저였을까, 사람의 눈이 먼저였을까? 어느 눈이 먼저 빛과 사물, 풍경을 발견했는가에 따라 사진이 달라지기는 할까? 아니면 순서에 상관없이 전혀 달라지지 않는 걸까? 

     왜 사람들은 알 없는 안경을 쓰는 걸까. 두 개의 창으로 당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걸까, 두 개의 창을 갖고 있어서 당신을 보는 일을 놓치고 말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걸까? 안경을 바꿔 쓰고,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 Bresson, 1908∼2004, 프랑스)과 최민식(1928∼2013)의 사진을 보다가 눈이 자신만의 유산을 남긴다는 것을 깨달았다. 

     몸의 어느 부분이 유산을 남겼던가. 손은 그림을, 조각을, 글을, 음악을 남겼다. 발은 무엇을 남겼나. 길에 흔적을 남겼겠지만 남겼는지 알아볼 수도 없고 남아 있지도 않을 것이다.

    코는 귀는 혀는 무엇을 남겼나. 오로지 누군가의 기억만으로 남긴 것이 회상될 것이지만 너무 허약한 증거일 뿐이다. 심장은 무엇을 남겼나, 간과 폐는, 신장은……. 눈만이 가장 충실하게 유산을 남긴다. 

    브레송과 최민식의 눈이 남긴 유산은 다른 이들이 남긴 유산보다 아주 오래 살고 있다. 전쟁이 끝나고 커다란 외투를 바닥에 질질 끌며 우산을 들고 걸어가던 독일 할레의 1945년 5월의 소년은 아직도 고개를 숙인 채 그 거리를 걷고 있다. 부서진 대나무 비닐우산을 쓰고 카메라를 바라보던 1967년의 부산 소녀는 아직도 부산의 그곳에서 우리를 바...
천세진
천세진 님이 만드는
차별화된 콘텐츠, 지금 바로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시집 <순간의 젤리>(2017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 <풍경도둑>(2020 아르코 문학나눔도서 선정), 장편소설<이야기꾼 미로>, 문화비평서<어제를 표절했다-스타일 탄생의 비밀>, 광주가톨릭평화방송 <천세진 시인의 인문학 산책>, 일간지 칼럼 필진(2006∼현재)
119
팔로워 348
팔로잉 3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