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를 만졌다

천세진
천세진 인증된 계정 · 문화비평가, 시인
2023/11/25
출처 - 픽사베이
<안개를 만졌다>

    새벽 어스름에 겨우 잠이 들었다가 평소와 다른 새 소리에 겨우 눈을 떠보니, 해가 사라진 것 같은 세상 위로 안개가 뿌려지고 있었다. 안개는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일시적인 존재이지만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던 경우는 많지 않았다.

     풍경으로만 느낄 수밖에 없는 안개가 그날은 사냥에 나선 짐승처럼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어쩌면 짐승의 몸은 보이지 않는 뒤에 따로 있고, 안개는 그 짐승이 조용히 뿜어낸 숨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짐승의 숨이 가빠졌는지 안개는 더욱 짙어졌다. 이제껏 알고 있던 세상이 사라지려는 건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충분히 그런 의심이 들만큼 아주 이상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스티븐 킹(1947∼)의 단편소설 『미스트』를 영화로 만든 <미스트>가 생각났다. 스티븐 킹의 작품을 좋아하지도, 읽지도 않았지만, 유일하게 접한 것이 영화로 본 <미스트>였다.

     짙은 안개가 다가오자, 인간적인 일상성이 지배하던 세상이 사라진다. 의심과 편견이 힘을 얻으며 사람들을 두 패로 나누었다. 사람들을 그토록 절박하게 만들었던 무섭고 어두운 안개의 끝에는 허무함뿐이었다. 조금만 더 냉철할 수 있었다면 찾아오지 않았을 어리석음이었음을 깨닫는 허무함이었다. 영화가 던지는 의미가 그랬다.

     안개가 끼면 세계의 시야는 흐려지고, 어딘가에 있으리라는 좌표를 그려주었던 나무들이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의심이 생겼다. 오늘의 이 안개는 이곳을 지나며 나를 데리고 가려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 안개가 지나가고 다시 태양이 뜨고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을 때, 다시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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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순간의 젤리>(2017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 <풍경도둑>(2020 아르코 문학나눔도서 선정), 장편소설<이야기꾼 미로>, 문화비평서<어제를 표절했다-스타일 탄생의 비밀>, 광주가톨릭평화방송 <천세진 시인의 인문학 산책>, 일간지 칼럼 필진(2006∼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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