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경기를 ‘하드캐리’한 여자농구의 전설 - 박신자

강부원
강부원 인증된 계정 · 잡식성 인문학자
2023/08/01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국제농구연맹(FIBA) 농구 명예의 전당 선수 부문에 헌액된 박신자 전 대한농구협회 이사(14번)의 상업은행 시절 모습. 출처- 동아일보DB

한국 농구의 여왕, 박신자(朴信子, 1941~ ) 

1960년대 여자농구 전성시대 이끈 박신자
   
“농구가... 농구가 하고 싶어요.” 

“포기하면 그 순간이 바로 시합 종료예요.” 

만화 <슬램덩크>의 명대사들이다. 1990년대 농구의 인기는 대단했다. ‘심은하’와 ‘장동건’이 출연한 드라마 <마지막 승부>도 폭발적인 관심을 얻었다. 그 시절 최고의 스포츠는 단연 농구였다. <농구대단치>에서 ‘연세대’와 ‘고려대’, ‘현대’와 ‘기아’의 라이벌 승부는 전쟁과도 같았다. 허재, 서장훈, 이상민, 현주엽과 같은 ‘스타 플레이어’의 위상은 웬만한 연예인을 뛰어 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여자농구는 남자농구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여자농구의 인기는 남자농구에 비할 바가 못 됐다. 남자 경기는 텔레비전 중계 방송을 해주면서, 여자 경기는 건너뛰기 일쑤였다. 중계를 하더라도 ‘프라임 타임’에는 남자 경기를 배정하고, 여자 경기는 남자 경기의 앞자리에 배치해 서둘러 끝내기 바빴다. 심지어 여자 경기는 승리 세리머니도 마음 놓고 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 경기장에서 남자 경기가 곧 바로 이어져야했기 때문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1990년대는 한국 남자농구의 전성기였을 뿐이었다. 

물론 여자농구가 남자농구보다 더 주목받던 시절도 있었다. 1960년대 박신자(朴信子, 1941~ )가 활약하던 때였다. 박신자의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국내에는 대적할만한 상대가 없었고, 서양 장신 선수들과 맞붙어도 밀리지 않았다. 농구는 팀 스포츠였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이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승리를 거두기 어려우나, 박신자는 혼자 힘으로 경기를 뒤집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말 그대로 혼자서 경기를 ‘하드캐리’하는 진정한 ‘크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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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신문과 오래된 잡지 읽기를 즐기며, 책과 영상을 가리지 않는 잡식성 인문학자입니다.학교와 광장을 구분하지 않고 학생들과 시민들을 만나오고 있습니다. 머리와 몸이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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