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와 숙녀

클레이 곽 ·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소망하는 사람
2023/03/25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生涯)와
목마(木馬)를 타고 떠난 숙녀(淑女)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傷心)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少女)는
정원(庭園)의 초목(草木) 옆에서 자라고
문학(文學)이 죽고
인생(人生)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木馬)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孤立)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作別)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燈臺)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未來)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木馬) 소리를 기억(記憶)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意識)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靑春)을 찾는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人生)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낡은 잡지(雜誌)의 표지(表紙)처럼 통속(通俗)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박 인환 시  - 목마와 숙녀 -

요즈음 MZ세대들의 성향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 세대의 성향은 조금 일찍 철이들면 중학교 일학년 때부터 조금 늦게 눈을 뜨면 고등학생 때부터 한번쯤 "목마와 숙녀" 앓이를 심하게 했었다. 박 인희라는 가수의 낭송시로도 유명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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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소망하며 살지만 현실에서 항상 부끄럽게 살아가는 소시민입니다. 살다보니 벌써 나이를 먹어서 거울을 보고 자주 놀랍니다.남은 인생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동하며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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