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살 생존자입니다> : 아무런 예고도 없이 사랑하는 이가 세상을 떠났을 때

신승아
신승아 · 삐딱하고 멜랑콜리한 지구별 시민
2023/10/14

이모가 자살했다. 향년 52세였다. 유서를 남기지 않았기에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국과수 수사 결과에 따르면 생전 이모의 방에서 발견된 일기장에 ‘죽고 싶다’, ‘살기 싫다’라는 내용이 반복적으로 쓰여 있었다고 했다. 몇 년 사이에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 이모가 집안의 가장 노릇을 했다는 얘기도 전해 들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몇 가지 단서만으로 죽음을 특정할 수는 없다. 그녀의 인생에 힘든 일은 늘 일었지만, 매번 돌파구를 찾아 앞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우리 모녀는 그녀의 불가해한 죽음 앞에서 수백 번 분열했다. 못다 한 생이 안타까워 울부짖다가, 상처 주었던 순간을 상기하며 자책했다가, 다른 가족들에게 죽음의 원인을 떠넘겼다가, ‘그럴 만했다’라는 무례한 말을 내뱉었다가, 이내 ‘대체 왜 자살했는지 모르겠다.’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부질없는 질문에 매달려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고인을 가슴속에 고이 간직한 채, 잘 떠나보내고 싶었다. 나는 2년 동안 제멋대로 흩어진 마음들을 그러모아 이모에 관한 기억을 역추적했다. 이모는 팔삭둥이로 태어났다. 달을 다 채우지 못하고 태어난 탓일까.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가 몰래 바람을 피워서 딸을 낳아 왔다며 걸핏하면 이모를 구박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억지다.) 집안에서는 구박데기였지만 밖에서는 어딜 가든 주목받는 멋진 사람으로 성장했다. 

이모는 지, 덕, 체를 갖춘 여성이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서구적인 이목구비를 가진 이모는 누구나 한 번쯤 뒤돌아 볼 만큼 뛰어난 미모를 자랑했다. 비상한 두뇌와 넘치는 승부욕, 끈질긴 근성은 그녀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공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야간 고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일에 치여 딱 한 번 2등을 한 게 너무 자존심 상해서 다시 1등을 하기 위해 잠까지 줄여가며 코피 터져라 공부했다고 했다. 지는 걸 죽기 보다 싫어했던 사람. 밝은 에너지가 넘치고 반짝반짝 빛나던 사람이 이모였다. 그래서 더욱 죽음을 헤아리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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