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법과 감정의 서사일까: '더 글로리' 를 바로 읽어야 하는 이유

김현성
김현성 인증된 계정 · 포동포동 고양이 힝고
2023/03/14
공적 질서에 대한 신뢰의 상실, 사적 복수, 학교 폭력, 가해와 피해, 연대

더 글로리를 설명하는 키워드들이다. 그리고 이 키워드들의 밑바탕에는 '법률' 이라는 한 가지 개념이 있다. 즉 법률이 인격권을 제대로 보장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또한 그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 글로리에서 표현되는 날것의 복수 그리고 그 복수의 밑바탕이 되는 감정을 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더 글로리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정의 문제는 그럴 수 있으나, 더 글로리는 엄밀히 말해 '법' 의 문제는 아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김은숙 작가는 복수의 서사를 극대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잘 작동하고 있는 현실의 한국 사법체계를 상당수 무력화시켰다.

처음부터 찬찬히 생각해 보자. 문동은은 학교와 가족이 본인을 도와주지 않자 결국 경찰서로 간다. 하지만 경찰서에는 동은이 명백한 상해의 증거 (팔의 화상)를 몸에 지니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윽박질러 쫓아낸다. 그 이유는 더욱 황당하다. 지역을 꽉 쥐고 있는 연진의 엄마 영애와 경찰서장이 동창이라는 이유로 신고를 묵살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사법절차가 '정말' 로 그리한가? 우리는 어쩌면 그렇게 믿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 현실의 사법절차가 그렇게 돌아갔다면 경찰서장보다 훨씬 더 권세 있는 '검사' 를 아버지로 둔, 얼마 전 이슈가 되었던 J모 군은 학교에서 학폭위에 회부되지도 않았을 것이며,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법조인들의 특성상 대법원까지 가서 징계가 확정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아무리 아버지가 권세가 있는 사람이었다고 해도 학교는 징계를 굽히지 않았으며, 법원도 그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정순신 씨가 끝끝내 대법원까지 가서 징계 결과를 지연시키기 위해 시간과 자원을 소모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의 공적 질서가 그럭저럭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즉 그는 '법률에 보장된 절차' 로 '예정된 파국을 지연' 시키는 것 말고는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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