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아이돌이라는 문화를 대변하는 이들의 노래 속에 담긴 신자유주의 사상에 관해 질문을 던지는 글 이었습니다. 아주 좋은 통찰이었죠. 하지만 전 이 글에 반대합니다. 이런 류의 글들에는 비판이 잘 달리지 않는 것 같아 직접 달게되었습니다.
본문에 대한 반박
전 본문을 읽으면서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가 찾아낸 부분을 함께 보시죠.
개인의 노력으로 ‘성공’하기에 세상에는 이미 너무나 많은 구조적 차별이 존재하고 있는데, 이 ‘노력’의 서사가 구조적인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덮어 버린다는 거지요.
......(중략)
그러니까, 이 구조적 차별에 관한 문제가 대중에게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들의 노래에서 완전히 삭제되어 있다는 것, 자신에 대해 스스로 말할 수 없는 ‘아이돌’의 입에서 나온다는 것을 우리는 다시 한 번 좀 더 심각하게 바라봐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거예요.
이제는 오히려 다른 방향으로의 ‘노력’, 공부나 주어진 트랙을 달려서 이룩한 성공이 아니라 불확실성으로 점철된 시대적 장애물조차 전부 딛고 일어서야만 ‘진짜’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점진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거죠. 아이돌의 노래는 이를 반증하는 ‘시대적 현상’이고요.
처음 시작은 노력으로 성공하기에는 구조적차별이 존재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리고 구조적 차별의 문제가 자연스레, 노력을 인정받기 어려운 사회의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생각해봅시다. 애초에 이런 말들이 나오는 원인을요. 요즘 시대에서 노력의 가치가 부정되고 MZ세대가 결혼을 포기하는 등의 것들은 사회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취직도 안되고, 계층의 이동도 어렵기 때문이죠. 노력해도 결과가 쉽게 나오지 않으니까요.
자 그럼 잘 생각해봅시다. 저희 아버지, 나아가 할아버지 세대를요. 1960년대는 지금보다 취업도 쉬웠고 계층 이동도 쉬웠습니다. 나름...
안녕하세요. 김도훈 님의 글을 읽고 생각한 점들을 글로 올렸으니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https://alook.so/posts/rDtpLkR
@ 장지현
이해했습니다. 대안을 도출한 비판이 아니고 경계를 위한 비판이었군요. 전 대안이 있는 줄 알고 기대하면서 글을 썼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토론을 좋아해서 이 대안가지고 꽤나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계층에 대한 장지현님의 관점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계층으로 인해 큰 불이익을 본 적이 없고, 저 스스로가 제 글에서 언급한 계층에서 '이상값'에 가깝습니다. 그럴려고 노력도 많이 한 편이고요. 이 부분은 개인 관점차이니, 뭐가 맞다 틀리다고 토론하기도 뭐한 내용이군요. 둘 다 맞는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저도 너무 오랫동안 제 관점 관련 글들만 보았던 것 같습니다. 완전히 감정을 배제한 토론이었다고는 자신할수는 없지만 다른 관점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즐거웠습니다. 친절한 답변 감사합니다.
1. 말씀하신 부분 이해하였습니다. '성공'의 정의 또한 시대에 따라 달라질테고, 그를 위한 노력도 달라질텐데 그러한 부분에 대해 제가 너무 개략하여 오해가 생긴 것 같아요.
글의 하단에서만 "이제는 오히려 다른 방향으로의 ‘노력’, 공부나 주어진 트랙을 달려서 이룩한 성공이 아니라 불확실성으로 점철된 시대적 장애물조차 전부 딛고 일어서야만…"이라고 하여 다소 흐름을 생략했습니다. 좋은 지적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 사회의 영향력을 과해석해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설명하는 걸 경계해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합니다. 개인의 행위자성을 간과해서는 안 되지요. 그러나 저는 여전히 계층의 영향력이 상당하다고 생각하고, 불공평에 기여하기에 이 문제를 심도깊게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관점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3. 이 부분은 개인이 느끼는 단어의 뉘앙스 차이인 것 같아요. 저는 '재화'를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 상품의 하위 범주로 이해하고 있어 큰 차이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흔히 재화와 서비스라고 나란히 놓일 때 재화로써요. 김도훈님께서 말씀하신 의도에 대해서는 이해하였습니다.
4, 5. 제게 명료하거나 뾰족한 대안이 있지는 않습니다. 저는 제게 그런 게 있었으면 여기에 글을 쓰지 않고 현실 정치에 개입했을 거라고 생각해요(ㅎㅎ) 다만 비판한다고 했을 때에는 현 상황을 잠시 멈추고 점검하고, 이게 맞는지 확인하고 계속 가거나, 방향을 전환하거나 하자도 포함된다고 봅니다. 저는 이 포지션에 가깝고요.
@ 최성욱
저도 이 쪽의 중립적인 의견에 공감하는 바 입니다. 완전한 자유는 방종이 될 확률이 너무나 높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신자유주의라는 가치 자체를 비판하지는 않습니다.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문제들을 고쳐야한다 정도죠. 자본주의 사회에 이것보다 더 잘 맞는 사상은...아직까지는 없습니다.
음.... 사실 이미 중립에서 살짝 오른쪽으로 치우쳤다는 느낌이 들긴합니다. 다만, 제가 자유지상주의자는 아니란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현재의 노력이 부정되고 어려운 사회상은 경제가 침체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과거 IMF가 해결되고나서, 꽤 괜찮다가 다시금 이런 문제들이 수면위로 떠오르는 것은 우연이 아닐테니까요.
@장지현
1. 사회적으로 노력의 가치가 부정당한 이유, N포 세대라는 말들이 유행했던 이유는 노력으로도 어려운 사회였기 때문입니다. 장지현 님은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개인의 노력으로 ‘성공’하기에 세상에는 이미 너무나 많은 구조적 차별이 존재하고 있는데, 이 ‘노력’의 서사가 구조적인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덮어 버린다는 거지요.
성공의 하위 범주에는 분명 계층 이동이 있습니다. 성공이 어려운 사회에서, 노력으로 성공하기엔 세상에 너무 많은 구조적 차별이 존재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에서 언급하신 '성공'에 방해되는 이유는 오직 '구조적 차별' 밖에 없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글의 주제 자체가 노력의 서사 '뒤의 것' 들을 생각해야하지 않을까였고, 그 '뒤의 것'이 바로 '구조적 차별'이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성공이 비교적으로 쉬웠던 과거는 노력을 막는 구조적 차별이 적어야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쓴 이유는, 구조적 차별이 노력을 방해하는 모든 것이구나 라고 생각하실 독자분도 있으실 것 같아서 입니다.
2. 계층 만으로 불공평이 오지 않습니다. 제가 극저소득층으로 태어나도, 운이 좋게 빼어난 머리를 지니고 있었다면, 소득에 따른 불평등은 제게는 남들보다 넘기 쉬운 문제이겠죠. 물론 여전히 어려운 문제이겠지만요. 사회의 계층으로 모든 걸 설명하는 '계층론'은 사회의 영향을 과해석한 나머지, 개인의 역량을 무시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계층이 모든 불평등을 일으킨다는 주장은 비약이 심하죠.
또한, 계층이 불평등을 일으키는 것이라면 저희는 계층의 수혜자에 가깝겠군요. 컴퓨터 혹은 스마트폰을 이용해 이런 류의 토론을 할 수 있으니까요. 동의하기 어렵네요.
3. '상품'이라는 단어와 '재화'라는 단어는 주는 느낌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상품' 이라는 단어는 적어도 제가 느끼기에는 몰인격적이고, 인간성이 제거된 '물건'이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재화'라는 것도 그런 측면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상품' 이라는 단어보다 도덕적인 거부감이 덜하여서 사용하였습니다. 상품이라는 것은 아이돌의 인격이 무시되는 듯한 인상을 주는 단어였고, 재화는 그 것보단 그 느낌이 많이 유했거든요. 이 부분은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잘못표현 될 수도 있습니다. 본래 의도는 단어가 다름에 따라, 문장이 주는 인상이 다르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4.결과의 평등은 신자유주의를 부정하는 이들이 자주 말하던 '대안'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미리 이 부분에 대해서 말을 한 것 입니다. 장지현 님이 본문에서 결과의 평등을 언급한 것이 아님은 확실합니다. 이 부분은 오해의 여지가 있겠네요. 제가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이들과 토론에서 항상 듣던 이야기라 오용한 것 같네요.
그렇다면 신자유주의에 대한 문제, 능력주의에 대한 문제에 대해 어떠한 대안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5. 맞습니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열혈한 옹호자는.... 아니지만, 꽤나 옹호하는 입장입니다. 그 외 다른 대안도 없고요. 그것에 관해, 신자유주의가 이런 문제점이 있고 그걸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라고 말씀하신 분이라면 개인적으로 대안으로 생각하는 것이 있을테니까요.
이렇게 공격적인 글은 가슴을 뜨겁게 하죠. 일리가 있어요.
다만 구조적인 차별이란 단어는 문화, 시대, 취향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오니 저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관점으로 보는 분도 있군요.
저는 결과의 평등은 기대도 안 하니 법치를 중심으로 한 밸런스 조율에 관한 노력을 포기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한쪽의 정의 중에 무엇이 옳은지 역사만이 알 것이고 저는 고래 싸움에 새우에 속하는 자들을 살리기 위한 밸런스 조정 지속성과 그들의 안 보이는 노고를 알아주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밸런스 조정 해주면 물가가.....두렵습니다.
1. 저는 계층이동이 자유로우면 구조적 차별이 덜하다고 쓴 적이 없습니다. 그때에는 그때의 구조적 차별이 존재하였죠. 지금과는 양상이 달랐을 뿐입니다.
2. 삶이 애초부터 불공평하다는 데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 불공평이 어디에서 오는지요? 본인이 속한 계층에서 오지는 않는지요.
3. 아이돌이 재화라는 데 동의하시면서 왜 상품이라고 적시하는 데에는 반대하시는지 궁금합니다.
4. 저 개인적으로 결과의 평등을 추구한다고 말씀드리지도 않았는데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면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는 것인지요. 한편에서 저는 대한민국 평균 임금을 밑도는 수입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제 위치가 그러하다면 신자유주의 비판에 대한 제 주장에 보다 정당성이 생기는지요?
5. 말씀하신대로 아이돌 그룹의 신자유주의적 특성을 비판하기 위해 쓴 글입니다만, 말씀주신 내용들은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 그 자체에 대해 저와 이야기 나누고 싶어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제대로 이해하였을까요?
이렇게 공격적인 글은 가슴을 뜨겁게 하죠. 일리가 있어요.
다만 구조적인 차별이란 단어는 문화, 시대, 취향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오니 저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관점으로 보는 분도 있군요.
저는 결과의 평등은 기대도 안 하니 법치를 중심으로 한 밸런스 조율에 관한 노력을 포기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한쪽의 정의 중에 무엇이 옳은지 역사만이 알 것이고 저는 고래 싸움에 새우에 속하는 자들을 살리기 위한 밸런스 조정 지속성과 그들의 안 보이는 노고를 알아주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밸런스 조정 해주면 물가가.....두렵습니다.
@장지현
1. 사회적으로 노력의 가치가 부정당한 이유, N포 세대라는 말들이 유행했던 이유는 노력으로도 어려운 사회였기 때문입니다. 장지현 님은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개인의 노력으로 ‘성공’하기에 세상에는 이미 너무나 많은 구조적 차별이 존재하고 있는데, 이 ‘노력’의 서사가 구조적인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덮어 버린다는 거지요.
성공의 하위 범주에는 분명 계층 이동이 있습니다. 성공이 어려운 사회에서, 노력으로 성공하기엔 세상에 너무 많은 구조적 차별이 존재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에서 언급하신 '성공'에 방해되는 이유는 오직 '구조적 차별' 밖에 없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글의 주제 자체가 노력의 서사 '뒤의 것' 들을 생각해야하지 않을까였고, 그 '뒤의 것'이 바로 '구조적 차별'이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성공이 비교적으로 쉬웠던 과거는 노력을 막는 구조적 차별이 적어야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쓴 이유는, 구조적 차별이 노력을 방해하는 모든 것이구나 라고 생각하실 독자분도 있으실 것 같아서 입니다.
2. 계층 만으로 불공평이 오지 않습니다. 제가 극저소득층으로 태어나도, 운이 좋게 빼어난 머리를 지니고 있었다면, 소득에 따른 불평등은 제게는 남들보다 넘기 쉬운 문제이겠죠. 물론 여전히 어려운 문제이겠지만요. 사회의 계층으로 모든 걸 설명하는 '계층론'은 사회의 영향을 과해석한 나머지, 개인의 역량을 무시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계층이 모든 불평등을 일으킨다는 주장은 비약이 심하죠.
또한, 계층이 불평등을 일으키는 것이라면 저희는 계층의 수혜자에 가깝겠군요. 컴퓨터 혹은 스마트폰을 이용해 이런 류의 토론을 할 수 있으니까요. 동의하기 어렵네요.
3. '상품'이라는 단어와 '재화'라는 단어는 주는 느낌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상품' 이라는 단어는 적어도 제가 느끼기에는 몰인격적이고, 인간성이 제거된 '물건'이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재화'라는 것도 그런 측면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상품' 이라는 단어보다 도덕적인 거부감이 덜하여서 사용하였습니다. 상품이라는 것은 아이돌의 인격이 무시되는 듯한 인상을 주는 단어였고, 재화는 그 것보단 그 느낌이 많이 유했거든요. 이 부분은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잘못표현 될 수도 있습니다. 본래 의도는 단어가 다름에 따라, 문장이 주는 인상이 다르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4.결과의 평등은 신자유주의를 부정하는 이들이 자주 말하던 '대안'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미리 이 부분에 대해서 말을 한 것 입니다. 장지현 님이 본문에서 결과의 평등을 언급한 것이 아님은 확실합니다. 이 부분은 오해의 여지가 있겠네요. 제가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이들과 토론에서 항상 듣던 이야기라 오용한 것 같네요.
그렇다면 신자유주의에 대한 문제, 능력주의에 대한 문제에 대해 어떠한 대안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5. 맞습니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열혈한 옹호자는.... 아니지만, 꽤나 옹호하는 입장입니다. 그 외 다른 대안도 없고요. 그것에 관해, 신자유주의가 이런 문제점이 있고 그걸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라고 말씀하신 분이라면 개인적으로 대안으로 생각하는 것이 있을테니까요.
1. 저는 계층이동이 자유로우면 구조적 차별이 덜하다고 쓴 적이 없습니다. 그때에는 그때의 구조적 차별이 존재하였죠. 지금과는 양상이 달랐을 뿐입니다.
2. 삶이 애초부터 불공평하다는 데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 불공평이 어디에서 오는지요? 본인이 속한 계층에서 오지는 않는지요.
3. 아이돌이 재화라는 데 동의하시면서 왜 상품이라고 적시하는 데에는 반대하시는지 궁금합니다.
4. 저 개인적으로 결과의 평등을 추구한다고 말씀드리지도 않았는데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면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는 것인지요. 한편에서 저는 대한민국 평균 임금을 밑도는 수입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제 위치가 그러하다면 신자유주의 비판에 대한 제 주장에 보다 정당성이 생기는지요?
5. 말씀하신대로 아이돌 그룹의 신자유주의적 특성을 비판하기 위해 쓴 글입니다만, 말씀주신 내용들은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 그 자체에 대해 저와 이야기 나누고 싶어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제대로 이해하였을까요?
@ 장지현
이해했습니다. 대안을 도출한 비판이 아니고 경계를 위한 비판이었군요. 전 대안이 있는 줄 알고 기대하면서 글을 썼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토론을 좋아해서 이 대안가지고 꽤나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계층에 대한 장지현님의 관점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계층으로 인해 큰 불이익을 본 적이 없고, 저 스스로가 제 글에서 언급한 계층에서 '이상값'에 가깝습니다. 그럴려고 노력도 많이 한 편이고요. 이 부분은 개인 관점차이니, 뭐가 맞다 틀리다고 토론하기도 뭐한 내용이군요. 둘 다 맞는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저도 너무 오랫동안 제 관점 관련 글들만 보았던 것 같습니다. 완전히 감정을 배제한 토론이었다고는 자신할수는 없지만 다른 관점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즐거웠습니다. 친절한 답변 감사합니다.
1. 말씀하신 부분 이해하였습니다. '성공'의 정의 또한 시대에 따라 달라질테고, 그를 위한 노력도 달라질텐데 그러한 부분에 대해 제가 너무 개략하여 오해가 생긴 것 같아요.
글의 하단에서만 "이제는 오히려 다른 방향으로의 ‘노력’, 공부나 주어진 트랙을 달려서 이룩한 성공이 아니라 불확실성으로 점철된 시대적 장애물조차 전부 딛고 일어서야만…"이라고 하여 다소 흐름을 생략했습니다. 좋은 지적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 사회의 영향력을 과해석해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설명하는 걸 경계해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합니다. 개인의 행위자성을 간과해서는 안 되지요. 그러나 저는 여전히 계층의 영향력이 상당하다고 생각하고, 불공평에 기여하기에 이 문제를 심도깊게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관점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3. 이 부분은 개인이 느끼는 단어의 뉘앙스 차이인 것 같아요. 저는 '재화'를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 상품의 하위 범주로 이해하고 있어 큰 차이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흔히 재화와 서비스라고 나란히 놓일 때 재화로써요. 김도훈님께서 말씀하신 의도에 대해서는 이해하였습니다.
4, 5. 제게 명료하거나 뾰족한 대안이 있지는 않습니다. 저는 제게 그런 게 있었으면 여기에 글을 쓰지 않고 현실 정치에 개입했을 거라고 생각해요(ㅎㅎ) 다만 비판한다고 했을 때에는 현 상황을 잠시 멈추고 점검하고, 이게 맞는지 확인하고 계속 가거나, 방향을 전환하거나 하자도 포함된다고 봅니다. 저는 이 포지션에 가깝고요.
안녕하세요. 김도훈 님의 글을 읽고 생각한 점들을 글로 올렸으니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https://alook.so/posts/rDtpLkR
@ 최성욱
저도 이 쪽의 중립적인 의견에 공감하는 바 입니다. 완전한 자유는 방종이 될 확률이 너무나 높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신자유주의라는 가치 자체를 비판하지는 않습니다.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문제들을 고쳐야한다 정도죠. 자본주의 사회에 이것보다 더 잘 맞는 사상은...아직까지는 없습니다.
음.... 사실 이미 중립에서 살짝 오른쪽으로 치우쳤다는 느낌이 들긴합니다. 다만, 제가 자유지상주의자는 아니란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현재의 노력이 부정되고 어려운 사회상은 경제가 침체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과거 IMF가 해결되고나서, 꽤 괜찮다가 다시금 이런 문제들이 수면위로 떠오르는 것은 우연이 아닐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