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도 밥 대신 돈 받고 싶다

김꼬막
김꼬막 인증된 계정 · INTP 그래픽 디자이너의 신혼 일기
2023/05/25

1. 혹시 간단하게 로고 하나만 부탁해도 돼? 내가 밥 살게!


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당시엔 그저 내가 남들보다 포토샵을 조금 더 잘 다룰 줄 아는 미대생이었다. 그렇다보, 지갑 사정이 가벼운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밥 혹은 술이 나의 노동력과 교환할 수 있는 고급 수단이었는지도 모른다. 새로 만든 동아리 로고나 과제 제출용 등이라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저 '꼬막이 너 짱이다 역시'라는 칭찬뽕에 취해 졸업할 때까지 금전적인 보상 하나 없이 노동력을 제공했을 수도 있었겠다.

그러나 디자인 짬밥 10년 차가 훌쩍 넘은 지금도 밥 혹은 술을 대가로 조심스럽게 딜을 해오는 경우가 왕왕 있다. 심지어 상대방도 나와 비슷한 연배의 산전수전 다 겪은, 노동력을 제공받으려면 응당 쩐이 필요하다는 것을 모를 수가 없는 직장인인데 말이다. 삼만 원어치의 밥 한 끼라면 가로 세로 300px, 72 dpi, 흑백, jpg 파일 정도인데 괜찮겠어..?





2. 캐리커처 간단하게 그려줄 수 있어요? 제가 밥 살게요!


이거 내가 장담컨대, 캐리커처는 미대생이 제일 많이 받는 부탁 TOP 3안에 든다고 아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일단 캐리커처를 부탁하는 사람들은 보통 연애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그러니까 100일 정도를 기념하고 싶은데 크게 뭘 사기에는 부담스러우니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정성 가득한 무엇인가를 원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연애 시작하고 100일을 넘기는 커플이 얼마나 많겠나. 그만큼 부탁도 정말 많이 받아 봤다구..

하지만 미대생 중에서도 손그림을 잘 그리는(어도비의 힘을 빌리지 않는), 그것도 인물의 특징을 잘 살려야 하는 캐리커처는 변태*들이나 하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도예 전공이라구 얘들아, 하루 종일 흙만 만진다구.. 단과대가 미술로 분류되어있다고 해서 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은 아니야..

예스걸이었던 내가 유일하게 거절했던 것이 이 캐리커처였다. 바쁘거나 금전적인 보상이 없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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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여행콘텐츠, 현 금융콘텐츠 만드는 디자이너입니다. 신혼부부, 재테크, 직장인, 일상에서 피식할 만한 일상툰을 그립니다. kimjiy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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