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사랑할 수 없을, 나의 시어머니

얼룩커
2022/02/14
나도 여느 며느리처럼 예쁨 받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다. 원래도 생글생글 살가운 성격은 못되지만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며느린데, 하나밖에 없는 시어머님이 원하는 며느리의 모습에 근접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아무튼 그랬다. 

시어머니는 좋은 분이시다. 
결혼 준비를 할 때 혼수며 예단, 패물 같은 허례허식 없이 심플한 커플링만 하겠다고 했을 때도, 식장은 대관 비용이 무료인 내 모교 동문회관에서 하겠다고 했을 때도 두말없이 ‘너희들이 함께 결정한 대로 하거라.’ 하셨다. 내심 어머니가 다니시는 교회 목사님을 주례로 모셨으면 하고 기대하셨음에도, 당시엔 생소했던 주례 없는 결혼식으로 결정한 우리에게 ‘그렇게 하려무나.’ 하셨다. 마흔이 넘어서도 자연 임신이 되지 않으면 입양을 하겠다는 내 선언에 ‘그래 너의 생각을 존중한다.’고 하셨던 어머니다.

이렇게 좋은 시어머니와 나 사이에 균열이 생긴 건 2014년 4월 16일. 잊을 수 없는, 그날 이후부터다. 그날은 세월호가 침몰 한 날이다. 처음엔 다 같이 부둥켜안고 슬퍼했다. 어머니는 통화할 때마다 금쪽같은 아이들을 제발 무사히 돌려 달라고 하나님께 매일 기도한다고 하셨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째... 시간이 가면서 정부와 일부 언론이 합세하여 ‘세월호 유가족 죽이기’가 시작됐을 때, 어머니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셨다.

‘놀러 가다 뒤진 것들 뭐가 잘났다고 유세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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