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oss the Rubicon; '주사위는 던져졌다' (5)
2023/01/24
(1편, 2편, 3편, 4편에서 이어집니다)
아마 1월 8일 늦게, 적어도 9일 오후까지는 카이사르가 원로원의 최종 권고를 알았을 것입니다 [1]. 이렇게밖에 적을 수 없는 이유는 가장 중요한 1차 사료인 카이사르 자신의 '내전기(Commentarii de Bello Civili)'에 날짜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큰 문제인데, 사료들마다 중요한 일의 선후 관계가 엇갈리는 경우가 있어서 어떤 순서를 취하더라도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지요. 얼핏 생각하면 당연히 내전기가 가장 옳겠지만, 로마 시민이 보기에 논란이 될 만한 사안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시간적 설명을 불분명하게 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내전기'에는 이 부분을 아래처럼 묘사했습니다.
아마 1월 8일 늦게, 적어도 9일 오후까지는 카이사르가 원로원의 최종 권고를 알았을 것입니다 [1]. 이렇게밖에 적을 수 없는 이유는 가장 중요한 1차 사료인 카이사르 자신의 '내전기(Commentarii de Bello Civili)'에 날짜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큰 문제인데, 사료들마다 중요한 일의 선후 관계가 엇갈리는 경우가 있어서 어떤 순서를 취하더라도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지요. 얼핏 생각하면 당연히 내전기가 가장 옳겠지만, 로마 시민이 보기에 논란이 될 만한 사안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시간적 설명을 불분명하게 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내전기'에는 이 부분을 아래처럼 묘사했습니다.
이 모든 소식을 전해 들은 카이사르는 병사들을 집합시켜 그의 적들이 수 차례에 걸쳐 그에게 저지른 부당 행위들을 낱낱이 설명했다. [연설 부분 중략] 13군단 병사들은 우렁찬 함성을 지르며 그들의 총사령관과 호민관들이 겪고 있는 부당한 대우에 언제든지 복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외쳤다. 병사들의 충성을 확인한 카이사르는 13군단을 이끌고 아리미눔(Ariminum)으로 향하면서 나머지 군단들에게도 동영지(동계 숙영지)를 떠나 그와 합류하라고 명령했다. ('내전기', 김한영 역, 사이, 49~51p)
보시다시피 루비콘 강을 건너는 장면이 아예 없습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의 표현이 아마 카이사르가 말한 그대로는 아닐 것이라 추정하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이 때 정황은 어땠을까요?
라벤나에서 리미니(Ariminum)까지는 대략 50km가 약간 넘습니다. 아래 구글 지도를 보면, 우회하지 않으면 52km 부근으로 나올 것입니다.
일자와 시간은 어떨까요? 위에서 말했듯이 일자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저는 카이사르가 1월 8일, 적어도 1월 9일에는 원로원 최종 선고를 알았을 것이고, 그 다음 날 일몰 후 행군을 개시해 새벽에 넘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래 수에토니우스의 글처럼 행군을 개시한 날 일몰 전까지 카이사르는 일반인까지 참석한 연회에 모습을 나타냈는데, 자신의 의도를 숨기려 했다는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연회를 개최한 날짜가 10일보다 늦었다면 일반인들도 소식을 전해 받았기 때문에 의심을 피하긴 어려웠겠지요. 로마 군단의 통상 행군 속도가 시속 5km였음을 감안하면, 라벤나에서 출발해 7시간 정도 걸렸을 것이며, 1월 초의 일몰 시간을 고려하면 강에 도달한 시점은 새벽 1~2시 부근이었겠지요. 이는 수에토니우스의 설명과 대충 일치합니다.
당시 그의 옆에 누가 있었을까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카시우스, 쿠리오는 7일 늦게 로마에서 리미니로 출발했고, 이러면 10일 전에는 리미니에 도착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안토니우스와 카시우스는 현직 호민관이기 때문에 법에 따라 국경을 넘을 수 없었으므로, 카이사르가 리미니에 도착한 후에야 합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호민관 임기를 마치고 원로원 의원으로 자리를 옮긴 쿠리오는 국경을 넘을 수 있으므로 시간상 불가능하지는 않은데, 리미니에서 라벤나까지는 50km를 더 가야 하므로 라벤나에서 합류했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2]. 이를 감안하면 카이사르가 적지 않은 루비콘을 넘은 장면이 남았다는 것은 상당한 행운입니다. 부하 장교로서 루비콘을 같이 넘었고 후일 역사가가 된 가이우스 아시니우스 폴리오(Caius Asinius Pollio)가 책을 저술했고, 100년 이상 뒤인 플루타르코스와 수에토니우스는 이를 기본 사료로 썼습니다. 유감이지만 폴리오의 원사료는 전해지지 않습니다.
이 때 카이사르 주위에는 기병 3백과 보병 5천 명밖에 없었으며, 나머지 군대는 알프스에 머물러 있었다. 적이 알지 못하게 갑자기 일을 벌이는 경우에는 많은 군대가 필요하지 않으며, 적들이 알고 미리 경계를 한다면 그들을 물리치기 힘들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카이사르는 부하들에게 단지 칼만 들고 갈리아의 대도시 아리미눔으로 들어가 가급적이면 사상자 없이 적을 정복하라고 말하였다. 그는 호르텐시우스에게 이 일의 지휘를 맡겼고, 자신은 시민들과 함께 평상시처럼 시간을 보냈다. 카이사르는 낮에는 검투사들의 시합을 구경하였고, 저녁에는 손님들과 함께 만찬에 참석하였다. 그렇게 흥겨운 시간을 보내던 그는 손님들에게 곧 돌아오겠다고 말하고는 아리미눔으로 달려갔다.
갈리아 땅과 이탈리아의 경계선인 루비콘 강에 이르렀을 때 그는 당시의 여러 가지 생각에 휩싸였다. 그는 지금이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고 생각하였다. 카이사르는 잠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아시니우스 폴리오와 그의 친구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의견을 물어보았다. 그들은 이 강을 건넘으로써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또한 후세에 어떻게 평가받을 것인가를 의논하였다. 마침내 카이사르는 결단을 내리고는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외치며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전집 II, 이성규 역, 현대지성, 349p. 카이사르 부분)
따라서, 호민관의 거부권이 무시되어 그들이 로마를 떠났다는 소식이 도착했을 때, 그는 즉시 비밀리에 두셋 대대(cohors)를 보내고, 의심받지 않고 그의 의중을 숨기기 위해 그가 세우려던 검투사 조련 학교 계획을 조사하려 사람들 앞에 나타났으며 평상시처럼 많은 사람이 참석하는 연회에 참석했다. 해가 진 뒤에야 그는 소수의 사람들과 은밀히 출발했으며, 근처에 있는 빵집에서 노새를 데려다 마차에 매었다. 선도하던 등불이 꺼지고 길을 잃었을 때 한동안 헤맸지만, 마침내 새벽에 길잡이를 찾고 좁은 샛길을 따라 걸어 길로 돌아왔다. 그런 다음 속주의 경계인 루비콘 강에서 군대를 따라잡은 후, 잠시 멈추고 자신이 하려는 행동의 의미를 깨달아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다. "아직은 물러설 수 있네; 하지만 일단 저 작은 다리를 건너면, 모든 문제를 칼로 해결해야 하겠지."
결정하지 못하고 그가 서 있는 동안, 이 징조가 나타났다; 놀랍고 아름다운 사람이 갑자기 보였는데, 앉아서 갈대를 불고 있었다. 양치기들이 그의 소리를 들으러 모였을 뿐 아니라 많은 군인들도 자신의 자리를 떠났으며, 그 중 나팔수들도 있었다. 그 유령은 한 명에게 나팔을 빼앗아 강으로 달려갔고, 전쟁 개시 소리는 매우 크게 반대편 강둑까지 울려 퍼졌다. 그러자 카이사르는 소리쳤다; "신들의 징조와 우리를 그렇게 다룬 적들이 가리키는 곳으로 나아가자. 주사위는 던져졌다." ('신격 카이사르의 일생', 수에토니우스, Suetonius • Life of Julius Caesar (uchicago.edu))
한국어 번역으로는 '주사위는 던져졌다', 영어는 'The die is cast'가 완전히 정착했습니다. 이것은 수에토니우스의 'Iacta alea est'의 번역인데, 플루타르코스는 카이사르가 그리스어로 말했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카이사르 부분이 아니라 폼페이우스 부분에 있습니다.
그리하여 카이사르는 루비콘 강에 도착했는데, 그에게 할당된 속주의 경계였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서서 건너기를 주저했는데, 물론 그가 하려는 모험의 크기를 헤아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절벽에서 입을 벌린 심연으로 뛰어내리려는 사람처럼, 그는 이성의 눈을 감고 위험과 이성의 사이에 베일을 둘렀다. 곁에 있던 사람들에게 다음처럼 그리스어로 소리질렀다. "주사위를 던져지게 둬라(Let the die be cast; Ἀνερρίφθω κύβος)". 그리고 군대를 건너게 하였다. (Plutarch • Life of Pompey (uchicago.edu)
«Ἀνερρίφθω κύβος», [anerríphthō kýbos]는 원래 그리스 희극 작가 메난드로스(Menandros; 영어 Menander)의 '플루트 소녀' 중에 나온다고 합니다. 카이사르가 젊은 시절부터 책을 많이 보기로는 이름나 있었으며, 다른 유명 희곡 작가 테렌티우스(Terentius)는 카이사르 자신이 직접 언급했을 정도니, 카이사르는 희곡을 직접 관람하거나 책으로 보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주사위를 던져지게 둬라'편이 '할 수 없지, Go다!'의 느낌이 더 잘 살아나는데, '주사위는 던져졌다'가 네 자씩 딱딱 운이 맞아서 바뀌기는 힘들 듯...
여담으로, 구글 지도에서 루비콘 강을 검색하면 아래 사진도 있습니다. 'Il dado e' tratto'는 '주사위는 던져졌다'의 이탈리아어판이지요 ㅎㅎ
漁夫
[1] 보통 당시 로마 가도를 사용해 로마에서 350km 떨어진 라벤나까지는 최소 3일 걸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더 빠른 정보 전달 수단을 빈번히 이용했다고 추측됩니다.
[2] 길 도중에 합류했을 수는 있지만, 한밤중이라 가능성이 낮습니다.
漁夫란 nick을 오래 써 온 듣보잡입니다. 직업은 공돌이지만, 인터넷에 적는 글은 직업 얘기가 거의 없고, 그러기도 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