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는 간첩이 많다 - 동백림 간첩 사건(1967)

강부원
강부원 인증된 계정 · 잡식성 인문학자
2023/01/20
동백림 간첩 사건으로 구속된 이들이 재판을 받고 있다. 출처-경향신문
호기심으로 시작된 대북 접촉
   
“크리스마스에 따분하게 이게 뭐냐?” 
“그럼 우리 오늘 저녁은 동백림 가서 얻어먹자.”
1960년대 독일 베를린의 북한 대사관. 출처-동아일보
1960년대 서독 베를린의 한국 유학생들에게 동베를린의 북한 대사관은 여차하면 들르게 되는 마실터였다. 냉전체제 아래 남북대립 국면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하기 어렵지만, 실제로 당시 독일 유학생들은 북한 사람들을 별 어려움 없이 접촉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분단국가임에도 동서 간 왕래가 자유로웠던 독일 베를린이라는 도시의 특수성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동독 사람이 서독으로 먼저 넘어오는 게 까다롭기는 했지만, 서독 사람이 동독을 다녀오는 것은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이역만리 조국에서 멀리 떠나와 감시가 소홀했기 때문에 베를린의 유학생들은 긴장도 느슨해진 형편이었다. 처음에는 불안하고 걱정이 많다가도 몇 달만 지나면 동서독을 가로지르는데 거리낌이 없게 됐다. 물론 그때 당시 남한 당국은 국내에서든 외국에서든 북한 사람과의 접촉을 철저히 금지하고 법률로 처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이나 예술을 공부하는 유학생 청년들 특유의 호기심과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기질까지 막을 수 없었다.
동백림 간첩 사건을 주도한 당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훗날 권력에서 밀려난 뒤 실종돼 공식적으로 사망 처리 됐다. 출처-동아일보

1967년 7월 8일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텔레비전 방송에 직접 나와 “동백림을 거점으로 한 북괴 대남 적화 공작단 사건이 일어났다”고 발표한다. 유럽의 한인 교포 및 유학생을 포함해 관련자는 194명이나 되었으며, 이들 모두가 북한 외교부의 지령을 받아 활동했다는 것...
강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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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신문과 오래된 잡지 읽기를 즐기며, 책과 영상을 가리지 않는 잡식성 인문학자입니다.학교와 광장을 구분하지 않고 학생들과 시민들을 만나오고 있습니다. 머리와 몸이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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