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혁현 · 오래된 활자 중독자...
2024/06/06
장르 소설을 향한 선입견이 있다. 이야기 자체는 재미있지만 그 묘사들이 (특히나 배경 묘사가) 얼기설기하여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그야말로 선입견으로 만드는 작가들 또한 어엿하게 존재한다. 도나토 카리시 또한 그러한 이들 중 한 명이다. 작가는 인물 묘사나 심리 묘사, 장면 묘사나 상황 묘사 뿐만 아니라 배경을 묘사함에 있어서도 문장을 아끼지 않는다. 
 “닫혀 있는 창문은 감은 눈 같았고, 벽에 난 금은 눈물이 흘러내리다 마른 흔적 같았다. 더는 유쾌한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 간판 문구나 알록달록한 그림은 마치 나이 들고 상처 입은 거인 같은 분위기만 풍겼다. 나무판자로 막혀 있는 자동 회전문은 고장 난 회전목마 같았다. 아스팔트를 뚫고 나온 소관목들은 마치 무덤에서 튀어나온 손가락뼈처럼 여기저기서 자라고 있었다.” (pp.9~10)
 소설의 도입부에 나오는 버려진 호텔의 묘사에서도 이를 살필 수 있다. 엄마의 손에 이끌려 이 버려진 호텔에 들어선 소년의 심리는 이러한 배경 묘사를 통해 증폭된다. 이어지는 장면, 버려진 호텔의 오랜 시간 방치된 수영장에 대한 묘사는, 소년이 엄마의 강요에 의하여 그곳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의 묘사로 연결되는데, 독자들은 층층이 쌓여가는 묘사들을 통해 순식간에 소설로 빠져들게 된다.
 “여느 때처럼, 청소하는 남자는 민첩하고 조심스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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