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의 시간> : 김근태, 남영동 22일간의 기록

신승아
신승아 · 삐딱하고 멜랑콜리한 지구별 시민
2023/11/27

건축가 김명식은 ‘남영동 대공분실’을 일컬어 치밀하게 설계된 악의 공간이라고 명명했다. 이보다 적확한 표현이 또 있을까. 서대문 형무소가 일제강점기의 잔악성을 입증하듯이, 남영동 대공분실 또한 군사 정권의 폭정을 예증한다. 빙빙 돌아서 올라가는 나선형 철제 계단은 중간에 계단참이 없고, 층수 표시가 되어 있지 않다. 피의자는 자신이 어디로 끌려 가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계단을 오르기 때문에 공포감은 배가 된다. 계단 꼭대기층에 다다르면 길고 어두운 복도를 사이에 두고 엇박자로 배치된 16개의 철문들이 나타난다. 어긋난 철문은 문이 열렸을 때 방 내부를 노출시키지 않고, 고문당하는 사람들이 서로 마주치게 될지도 모르는 불상사를 전면 차단한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보통 아파트 현관문 안쪽 중앙에 고정된 투시경은 반대로 밖에서 안을 감시할 수 있게끔 설치되어 있다. 방안의 전등 불빛을 조절할 수 있는 스위치도 조사실 밖에 있어서 밝기로 내부를 통제했다. 철문 안에 지어진 방은 대략 3평 남짓 크기이지만 아늑함과는 거리가 멀다. 철망으로 둘러쳐 있는 전구와 형광등,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붙박이 형태로 바닥에 박혀 있는 철제 가구와 침대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고문의 도구로 활용된 욕조는 성인 남성의 평균 키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길이가 짧지만, 머리를 충분히 처박을 수 있을 만큼 깊이가 깊다. 방 천장에는 폐쇄 회로 카메라를 달아 생리 욕구까지 적나라하게 노출시켰다. 내부 벽면은 모두 방음처리를 해 고문 당할 시에 터져 나오는 비명 소리가 외부로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막아두었다. 

이 건물의 하이라이트는 5층 벽면에 일렬로 줄지어 놓여 있는 19개의 쪽창이다. 이 쪽창은 외부인의 의심을 피하는 트릭이자, 고문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장치이다. 입면의 비례를 계산하여 만들어진 쪽창은 완벽한 조형미를 자랑한다. 사람 머리 하나 내밀 수 없을 정도로 가로 폭이 좁고 세로 폭이 긴 창문은 독특한 디자인으로 시선을 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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