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에 대하여」, 다케다 다이준

Orca
Orca · 제국에 관한 글쓰기
2024/03/25
멸망에 대하여 
근대 문학자의 염두에는 어딘가 "멸망"이라는 문자가, 혹은 멸망에 대한 두려움이, 또한 멸망에의 예감, 멸망자에의 애수가 달라붙어 있는 듯하다. 옛날부터 비극은 여러 형태로 멸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근대에 들어와서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데도 멸망의 냄새를 풍기는 작품이 늘고 있는 느낌이 든다. 게다가 이는 단지 문학만의 일은 아니다. 
이러한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은, 본래 종전이 패전이고 전쟁정지가 그대로 파멸의 막장이었던 일본의 현실을 두려워하는 나의 정신박약으로 초래된 것임에는 틀림없겠다. 역시 "멸망"이라는 문자에 마음이 끌리고, 비겁하고 유약하다는 것은 알지만 마취약을 복용하는 것처럼 이 두 글자를 가슴에 떠올리고 그것에서 출발하여 온갖 것들을 생각하는 버릇이 조금씩 습관이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극히 개인적인, 게다가 철저히 사색이 결여된 흐리멍덩한 패전심리는 나 자신의 경우, 결코 가와바타 야스나리 씨가 말했던 저 "말기의 눈"만큼 투명한 것은 아니고, 속물, 속념에 탁해진 모습 그대로, 살아지는대로 살고자 하는 게걸스러움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때때로 멸망을 사용하여 절로 이 내 몸을 움츠러들게 하고, 떨게 하고, 심사숙고하게 하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 된 현재, 세계문학 가운데서 이런 어두운 그림자를 무리해서라도 발견하려 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바라 하겠다. 
우리들은 영화관의 평화로운 어둠 속에 편안히 앉아서 화산의 폭발에 의한 고대 폼페이 최후의 날이나, 석조 마천루가 순식간에 머리 위로 무너져내리고 발 밑의 대지가 쩍하고 열려 사람을 삼키는 샌프란시스코 지진을 상쾌하게 바라볼 수 있다. 큰 댐이 터져 무너지는 것이나 허리케인의 폭위를 감상하고 돌아온다. 인디언이나 토인이나 토비의 무리가 무시무시하게 벌레처럼 전멸을 당하는 장면을 기쁘게 구경한다. 멜로드라마나 서부극만은 아니다. 스탈린그라드 공방전에서 흰 눈 위에 겹겹이 쌓인 독일과 러시아 양국 사람들의 얼어붙은 시체들, 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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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6년, 방공통제사 3년, 석사 생활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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