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뷰
슬램덩크, 포기할 수 없는 이야기들
<슬램덩크>에 페미니즘 끼얹기? - 끼얹으려면 잘 좀 합시다 +알파
2023/01/31
어떤 작품에서든 젠더박스를 읽어내고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비판이 적절한 작품과 ‘덜’ 적절한 작품을 구분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다. 덜 적절한데도 유명세를 타고 있는 작품을 골라 굳이 비판한다면, 그건 작품 속 젠더 재현의 문제보다는 유명세 때문이라는 의혹을 피하기 어렵다. 그런 의혹 속에서 글의 의제와 논점이 곧이곧대로 읽힐리 만무하다.
(주의: 이 글은 최근 악명을 떨치는 글을 계기로 하여 쓰였으나, 이 글을 읽기 위해 그 글을 반드시 읽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니, 읽지 않는 것을 권장합니다.)
(주의: 이 글은 최근 악명을 떨치는 글을 계기로 하여 쓰였으나, 이 글을 읽기 위해 그 글을 반드시 읽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니, 읽지 않는 것을 권장합니다.)
단적으로 말해 <슬램덩크>의 여성 재현은 특별히 문제적이지 않으며, 당대 다른 소년만화 가운데서는 오히려 꽤 바람직한 예다. 대상화하는 재현도 드물고 한나 같은 경우는 멋지게 그려진다. 그리고 나도 이번에 발견했지만, 기자 박하진도 있다! 남자 농구가 제재이니 남성 중심 만화인 건 맞을 것이나, 당대의 여성혐오 하중을 버티며 더 나은 재현을 하려 노력한 점은 인정할 수 있다. <슬램덩크>에 서비스컷이나 판치라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으며, 어느 시점 이후로는 거의 보이지 않는 데서 그 노력이 도드라진다. 이노우에가 사사한 만화가가 <시티헌터>의 호조 츠카사였단 걸 생각하면 <슬램덩크>를 그만큼 청정구역으로 그려낸 것은 놀라운 일이다. 물론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 하지만, 비유하자면 항일운동은 안했지만 친일도 안한 사람을 항일운동 안했다고 친일파로 몰 수는 없다. 그 시대에 친일 안하기만 해도 얼마나 힘든 일인데.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건 <슬램덩크> 변호만은 아니다. 그 글의 과오에서 배우고 질문하고 싶다. 페미니즘의 시선에서 스포츠 콘텐츠를 읽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가? 물론 다양한 방식으로 가능할 것이다. 그중엔 한 작...
만화평론가, 강의 노동자. 한국만화가협회 만화문화연구소 연구위원. 2011년 인문만화교양지 《SYNC》에서 만화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해, 《빅이슈》, 《주간경향》, 《황해문화》, 《보고BOGO》, 《웹툰인사이트》, 《지금, 만화》 등에 글을 실었습니다.
공포는 가장 평등하다는 관점은 좀 신선하네요. 그런 관점은 생각해보지 않아서...관심이 안 가는 분야라서 그런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