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엔 아직 이르죠?
의사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아까 웃는 얼굴로 내시경 한번 해보죠 뭐...
할 때 와는 딴판이다.
소견서 써 줄테니 빨리 큰병원에 가 보란다.
종합병원에 예약을 해놓고 소견서와 더불어 써 준 설명서를 들고 집으로 왔다.
설명서가 몽땅 영어다. 사전을 들고 찾아보니 암으로 인한 분화구... 암.. 암.
온통 암이란 글자 투성이다.
저녁에 집에 온 남편이 설명서 좀 보여달란다.
끝까지 안 보여줬다. 충격적인 결과는 나혼자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겠지.
길을 가다가도 속이 너무 아파 걷지를 못하고 약국 찾아 진통제를 사먹던 날들..
가는 병원이다 아무 이상없다고... 사촌이 논 샀나 배가 아프게... 라는 소리까지 들었는데 암 이라니..
아무 생각도 들지않고 마음이 착 가라앉았다.
주마등 처럼 스친다는 말. 그 말 처럼 내가 살아온 시간들이 눈 앞에 쫙 펼쳐지는 느낌이었다. 미련은 없었다.
지금 당장 이세상 하직한다 해도 아무런 아쉬움이 없었다. 억울하지도 않았다.
남편 얼굴을 쳐다보니 총각 때 빼빼 말랐을때보다 살짝 살이 오르고 중년의 완숙함이 풍겨난다. 저 양반은 처녀장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