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冊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소설, 마라톤 그리고 인생

강현수
강현수 · 영화와 冊.
2024/06/15
2007,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최근 몇 번 하루키에 실망한 탓에 이 책을 읽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하루키의 매력은 아직도 진행중인가 보다. 여전히 하루키의 이름을 거론하며 그 권위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경우를 종종 본다.

하루키 가라사대 <카라마조프네 형제들>, <위대한 게츠비>… . 대단한 책들이긴 한데 개인적으론 <카라마조프네 형제들>은 읽기 벅차 그 책의 위대함을 곱씹을 여유가 전혀 없었다. 번역 탓으로 돌리기도 쉽지 않은데 여러 버전이 다 뻑뻑해 진도 나아가기가 무척 어려운 책으로 <안나 카레리나>와 비슷한 느낌을 준 책이다. <위대한 게츠비>의 경우는 번역 문제가 있었으리라 본다. 최근 읽은 <상실의 시대>를 새 버전인 <노르웨이 숲>으로 읽으면 다른 감정이 일어날지 모르겠다. 나는 <위대한 게츠비>를 옛 버전으로 읽었고 꽤 재미있게 읽었지만 다른 위대한 책보다 더 위대한지는 잘 모르겠다. 문장이 아름답다고 하는데, 내가 다른 이들보다 특별히 더 많은 소설을 읽은 것이 아닐 텐데도 이보다 유려한 문장의 소설은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자기 확신이 없는 아마추어다 보니 심란해진다.

권위로 치장했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말을 하는 전문가의 판단은 무시하는 편이다. 그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거르는 게 아니다. 이해하지 못하면 이해할 때까지 권위자의 손을 놓진 않는다. 반면 전문가가 소개하는 어떤 작품을 읽었는데 나와 해석이 완전히 다르게 내려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경우는 보통 내 해석을 믿는 편이다. 매일 화면에 나와 매 작품에 그럴듯한 말을 붙어야 하는 전문가보다 가끔 한 작품에 매진해 내리는 내 해석이 더 낫다는 믿음 정도는 마련된 요즘이다.

예를 들어 이동진 씨가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극찬한 거로 알고 있다. 이해는 간다. 대중적인 평론가로서 그가 소개한 어떤 작품이 대중에게 재미와 같은 만족감을 주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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