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귀신이 머무는 언덕: 연극 <언덕의 바리>
2024/01/18
일제강점기는 대한민국을 말하면서 떼어놓을 수 없는 역사다. 실제 그 시기를 겪어보지 못했던 이들도 이미 암울했던 그 시기에 대한 울분을 품고 자란다. 한 세대의 생물학적 정보를 다음 세대로 이어가는 것이 유전이라는 개념이라면, 한 세대의 삶을 다음 세대로 이어가는, 사실상의 역사적 유전이 꾸준히 일어나고 있는 것. 이 역사적 유전을 잇는 작업으로서 조명 받지 못했던 독립운동가의 발자취를 따르려는 시도들이 있다. 그중 어떤 이야기는 희미하게 남은 자취마저 너무 강렬한 나머지 명확하게 남아있는 사료보다 더한 채취를 뿜어낸다. 예컨대 오히려 역사적 유전을 끊고자 했던 한 여성의 투쟁의 이야기.
‘프로젝트 내친김에’와 고연옥 작가, ‘극단 동’의 연극 <언덕의 바리>를 본다.
대극장의 객석을 배경으로 삼은 너른 평면의 무대를 임시로 설치된 객석이 ‘ㄷ’자 모양으로 둘러싼다. <언덕의 바리> 무대 구조는 이처럼 특이한데, 관객은 무대와 비슷한 눈높이로 앉아 무대를 관통해 서로의 (옆)얼굴을 마주한다. 긴장과도 같은 고요한 적막은 우리가 이 이야기의 배경을 알고 있기 때문일 테고, 그 적막 속에서 배우들의 몸짓은 스며들어 강렬한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독립운동가 ‘여자폭탄범’ 안경신. ‘폭탄범’이라는 단어가 일제강점기 목숨을 내건 독립 투쟁임을, ‘여자’라는 단어가 가부장적 제도와의 싸움임을 암시한다. 그러니까 이것은 한 인물이 벌였던 두 싸움에 대한 이야기다.
노파의 건조한 음성이 몽환적인 꿈과 섞인다. 언덕과 강을 배경으로 하는 환상 속에서, 노파와 노를 젓는 소년의 수수께끼 같은 대화는 그녀를...
‘프로젝트 내친김에’와 고연옥 작가, ‘극단 동’의 연극 <언덕의 바리>를 본다.
대극장의 객석을 배경으로 삼은 너른 평면의 무대를 임시로 설치된 객석이 ‘ㄷ’자 모양으로 둘러싼다. <언덕의 바리> 무대 구조는 이처럼 특이한데, 관객은 무대와 비슷한 눈높이로 앉아 무대를 관통해 서로의 (옆)얼굴을 마주한다. 긴장과도 같은 고요한 적막은 우리가 이 이야기의 배경을 알고 있기 때문일 테고, 그 적막 속에서 배우들의 몸짓은 스며들어 강렬한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독립운동가 ‘여자폭탄범’ 안경신. ‘폭탄범’이라는 단어가 일제강점기 목숨을 내건 독립 투쟁임을, ‘여자’라는 단어가 가부장적 제도와의 싸움임을 암시한다. 그러니까 이것은 한 인물이 벌였던 두 싸움에 대한 이야기다.
노파의 건조한 음성이 몽환적인 꿈과 섞인다. 언덕과 강을 배경으로 하는 환상 속에서, 노파와 노를 젓는 소년의 수수께끼 같은 대화는 그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