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쿠라노하타: 우리들의 깃발> 조선학교에서 읽은 ‘80년대’

김원
김원 · 구술사연구자
2023/11/23


1
80년대 후반 대학을 다닌 사람들은 소설가 안재성이란 이름, 아니면 리얼리즘 소설의 전형 <파업>을 읽거나 들어본 일이 있을 것임. 비슷한 시기 대학 내 상영장소에서 백골단이 치고 들어 올까봐 두려워하며 봤던 영화 <파업전야>와 비슷한 플럿을 지닌, 87년 이후 노동자계급의 각성을 그린 80년대 노동문학의 전범이다.

하지만 나는 안재성의 <파업>은 아무리 읽어도 와닿질 않았다.  건조하고 다음 결론이 뻔해 보이던, 하지만 선배들은 “파업을 읽고 울지 않으면 노급의 당파성을 체득하지 못했다”는 둥 무의식적인 강요를 당하던 그 텍스트는 맞지 않았다.  물론 당시 그 얘기를 누구에게도 하진 않았다.

대신 내가 좋아했던 안재성의 텍스트는 <사랑의 조건>이었다.  혁명운동에 투신한 김진숙이란 여성주인공과 남성 김광주 간의 운동과 사랑, 당대 ‘동지적 결합’에 대한 텍스트였다.  다소 민망한 대목에 밑줄을 치며 읽던 것을 후배들이 놀리던 기억이 새로움. 변혁, 사랑, 조직, 육체와 정신 등 지금 보면 좀 다르게 보겠지만, ‘80년대’의 아우라를 빚어낸 소설이었다.

2
박기석의 <보쿠라노 하타>는 1950~55년, 한국전쟁부터 1955년 총련 결성이란 ‘50년대 일본’ 속에서 도립조선인학교에서 그네들이 들었던 깃발, 혹은 일치시키고 했던 조국이란 깃발을 둘러싼 ‘복잡한 상황’에 대한 글이기도 하다. 주인공 석철이 폐품수집을 하던 아버지에 대해, 저 폐철들이 조선전쟁의 무기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냐고 ‘대드는 장면’은 고바야시 마사루의 <가교>를 떠올리기도 하고, 한반도에서 밀항했다가 외국인등록증을 지니지 않았다는 이유로 오하라강제수용소를 거쳐 강제 송환되는 김남식을 통해 출입국관리체제의 폭력성을, “울지마 태일아”란 챕터에서는 1955년 이전 민족단체가 공화국 지향적인 선각분자와 일본공산당 민족대책부 계열의 후각분자로 나뉘면서, 민대부 시기 군사기지 습격 등이 부정되고, 이에 동참했던 태일의 분노와 울부 짓음을 통해 당시 고통의 ...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근현대사에서 잊혀진 기억을 공부하고 있다. 개인의 삶을 통해 냉전 시기 역사, 정치, 문화를 살펴보고 있다. 영화, 소설 그리고 산책을 즐긴다. <여공 1970> <박정희 시대 유령들>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을 썼다.
26
팔로워 45
팔로잉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