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의 보편성

동네청년 · 망원동에 기거하는 동네청년입니다.
2024/03/08
오늘날 되찾은 땅인 한국은 조선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이들이 되찾은 조선이다.

논란의 여지없이 2차세계대전과 일본제국 붕괴의 산물인 한국이라는 민족국가는 줄곧 "잃어버린 것의 회복"이라는 사명에 그 정당성을 기반해왔다. 1948년 이승만 정부가 수립되고 나서는 북쪽의 땅을 "빨갱이"들로부터 되찾아야 한다는 그것이었고, 이것은 정부가 없었을 적 이념의 기반이 되었던 독립운동, 즉 일제로부터 빼앗긴 땅을 되찾아야 한다는 근대식 민족국가 건립에 대한 열망의 연장이었다. 오늘날 헌법이 인지하는 국토가 조선의 그것이고 민족주의의 주춧돌이 되는 문화재, 위인, 국사 등이 조선시대의 주류문화였던 유학과 떼어놓고 논해질 수 없음을 고려할 때 되찾아야 하는 땅은 조선의 땅, 되찾아야 하는 민족의식은 조선 성리학 엘리트들의 그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독립운동의 주역들이 원했던 것은 (남북을 막론하고) 경복궁 안의 왕권 복권이 아닌 헌법제정과 징병제, 보통선거제, 민주주의였던 것을 미루어보면, 이들이 되찾고자 했던 빼앗긴 땅은 어쩌면 "한 번도 현존하지 않았던 과거", 즉 실제조선시대에서는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민족주의 기반의 근대국가였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시계를 조금더 돌려 일제강점이 시작되기 전 조선시대를 보면 이는 더 명확하다. 나중에 독립운동의 주역이 될 인물들은 영어와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한 경우가 많았고, 유학을 갔거나 가고 싶어했다. 없어진 조선을 재건하고 싶어했던 독립운동가들이, 조선이 실재하던 시절엔 조선으로부터의 독립을 꿰했었다. 이는 엘리트계층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고, 세기말 동학운동, 천주교 유행의 주역이었던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도 기존 질서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고자 했던 노력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다시말해, 오늘날 되찾은 땅인 한국은 조선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이들이 되찾은 조선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접근했을 때 헬조선에 대한 담론으로 발전한 비판적논의와 "외국"을 닮고 싶은 마음은 반공, 반일에 의존해왔던 기존 한국의 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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