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릉』, 나카지마 아쓰시(中島敦)
2024/03/24
나카지마 아쓰시中島敦의 <이릉李陵> (1943년 病死 직후 발표) 을 다시 읽었다. 흉노에 포로로 잡힌 이릉과 소무蘇武의 인생행로가 대비를 이루고, 이릉을 변호하다가 궁형을 당하고 <사기>를 쓴 사마천의 에피소드가 병행해서 제시된다. 무제武帝 치하 한 제국의 법은 엄했다. 벼슬아치들과 그 친족들은 모두 언제나 황제가 내리는 칼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흉노를 치기 위해 출정한 이릉은 막북漠北에서 조정으로 사자를 보내 "전선 이상 무, 사기는 매우 왕성"이라고 보고한다. 그 보고를 전한 진보락陳步樂은, 잘못된 보고를 전했다는 이유로, 이릉의 군대가 패해 전멸했다고 알려졌을 때, 자결해야 했다. 이듬해 이릉이 포로로 잡혀 항복했다는 보고가 조정에 도착한다. 무제는 격노하여 중신을 모아 이릉과 그 친족의 처분을 결정하고자 한다. 이릉이 출정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를 칭송하고 축복했던 신하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를 반역자로 매도할 수 있었다. 칭송한 것은 그의 떳떳함이고 매도하는 것은 그의 죄이므로. 용감한 장수의 떳떳한 행로를 칭송하고, 패한 장수의 용서할 수 없는 반역, 즉 그의 항복을 매도하고 징치하는 것, 그것이 사직의 신하의 본분이었다. 한 제국의 기강은 그런 신하들에 의해 지탱되는 것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신하들의 표변에는 표변하는 세상에 뒤쳐지지 않고 천변만화하는 법의 지엄함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무제의 기색을 살피고, 자신과 처자식의 안위를 도모하려는 인간의 비겁함이, 사실상 분리불가능하게 뒤섞여있었던 점에, 이 중신회의의 곤란함이, 난제가 있었다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 난제를 풀 만큼의 지혜가 없는 자는 거북함과 역겨움과 비위 상함을 견딜 수 없는데, 어리석은 행동으로 자신을 망치지 않기를 어떻게 바랄 수 있었겠는가. 바로 그러한 사람, 일개 하급 문신의 한 사람인 사마천은 감히홀로 이릉을 변호한다. 하급 문관이 불손하게 반역자를 감쌌다는 이유로 그는 궁형을 받는다. 나카지마 아쓰시는 이렇게 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