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린 간장밥

토마토튀김
2024/02/13
지금 생각하면 어린이집도 없고, 유치원도 일곱 살이나 되어야 갈 수 있는 시절에는 엄마들이 어떻게 아이들을 키웠나 상상하기가 힘들다. 
세기말 1999년, 2000년만 해도 갓난아기를 맡길 데가 없어서 아무 어린이집이나 이불 둘둘 감싸 안고 들어가서 봐달라고 하기도 했었다. 앞뒤 대책도 없이 대학원은 등록해 놨지, 수업은 하루종일 꽉 찼는데 아기 봐줄 사람은 없지... 학교 가는 날 아침까지도 대책도 하나도 없었던 이십 대의 내 얘기다. 

나에게는 두 살 차이 남동생이 한 명 있다. 국민학교 선생님이었던 엄마는 나를 낳고 아이를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에 학교를 그만두셨다고 한다. 지금의 나는, 그리고 그 이야기를 귀가 따갑게 수백 번 듣기 시작했던 어린 시절에도 왜 하던 일을, 선생님이라는 전문적인 분야의 직업을 엄마가 그만두어야 했을까 이해가 가지는 않지만 당시 사회의 분위기는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짐작만 한다. 
하긴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12살 차이 나던 언니도 대학을 졸업하고 '신부 수업'을 하고 있었으니 말 다했다. 신부 수업이란... 조금은 잔인하게 잘라 이야기하면 결혼을 하기 전의 여자 백수다. 
내가 이렇게 2-30년 전 이야기를 지루하게 꺼내는 이유는 일을 그만두고 우리 남매를 키우던 엄마의 하루가 생각이 나서다. 

출근하시는 아빠가 드실 아침을 차리고(아빠가 아침 밥상을 받으셨을 때는 나는 늘 아빠 뒤 이불에 파묻혀있었던 기억이 난다) 아빠가 출근을 하시면 청소를 시작했다. 그때는 청소기나 있었나. 엄마가 방빗자루를 들고 무릎 꿇고 이 방, 저 방 다니면서 비질을 하면 우리들은 그걸 피해서 쪼르르 도망 다녔다. 
그리고 오전에 마당 빨랫가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손빨래를 했다. 거의 매일 빨래를 했다. 83년, 84년에 하얀 금성 백조 세탁기(백색 가전이라는 말의 기원이 여기에서!)를 구입하기 전까지 손으로 빨래를 다 했다. 그리고, 장독대 아래의 광(창고의 옛말이다)에서 마늘을 꺼내기도 하고, 주황색 바가지에 소금을 퍼서 가지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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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먹으며 글을 씁니다. 에세이집 <시나리오 쓰고 있네>, <아무 걱정 없이 오늘도 만두>, <어쩌다 태어났는데 엄마가 황서미>를 발간했습니다. 지금은 드라마와 영화 시나리오를 씁니다. 몰두하고 있습니다. 일 년 중 크리스마스를 제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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