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에모] 쇠젓가락으로 밥 먹을 수 있을거유.

진영
진영 · 해발 700미터에 삽니다
2023/03/12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혼을 빼고 일을 하는거지.'
부산하게 움직이는 남편을 보고 있자니 저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반바지에, 유약 작업을 했는지 머리와 얼굴엔 온통 허연 가루를 뒤집어 쓰고  한 쪽 발에는 슬리퍼를, 다른 한 쪽은 맨발인 채로 뭐가 그리 바쁜지 정신없이 왔다갔다한다. 그런 남편을 한 동안 뻔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슬리퍼나 마저 신고 하지...'
버려진 슬리퍼 한 짝이 뻘쭘하니 마당 한 구석에 놓여있었다.
한참을 보고 있어도 신을 생각이 없어 보여 슬며시 슬리퍼를 집어 남편 앞에 놓았다.
"신이나  신고 하소"
그제서야 남편은 멀뚱하게 자기 발을 내려다 본다. 그리고 하는 말.  "내가 슬리퍼를 한 짝만 신었나?"   어이가 없다.
옆에서 보고 있던 선배라는 사람이 껄껄 웃으며  "그래도 와이프가 최고네"  한다.

그날, 나는 결심했다.
이 사람에게 어떠한 잔소리도 바가지도 긁지 않겠노라고.
집에 오면 그저 편안하게 쉬게만 해 주겠노라고.
자기 능력 마음껏 펼치도록 돕겠노라고...
신발을 신었는지 벗었는지도 모르고 일에 골몰하는 사람에게 뭘 더 바라겠나. 그냥 집에서만은  편하게만 해주는게 내 역할이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까지 나는, 대체로 그 결심을 지키며 살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대체로' 라고 하는 것은, 워낙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이고 끊임없이 잔소리거리를  만들어내고 그러면서도 개선의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아 여지없이 그 결심을 무너뜨리고 싶은 마음이 솟구칠 때가 없잖아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화가 나고 잔소리하고 싶은 생각이 치밀어 오르다가도  작업실에서 또 혼을 빼고 있는 그 사람을 보면,  그래. 원래 이런 사람이었지. 그러니 이 사람이지. 하고 마음을 가다듬곤 한다.

남편은 손재주를 타고 난 사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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