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탄생의 비밀

천세진
천세진 인증된 계정 · 문화비평가, 시인
2023/09/19
출처 - 픽사베이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운위云爲했던 시절도 한참 지났다. 도서관이나 서점에 인문학 관련 서적들이 가득 꽂혀 있고, 사람들이 그 앞을 서성이던 풍경도 이제 시들해졌다. 최근 한국 사회를 관류하는 풍속을 보면, 인문학 운운도 옷이나 음식이 만들어냈던 물줄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한때의 유행이었던 것 같다. 

     유행 만들어내기를 좋아하고, 유행 따르기를 좋아하는 나라이니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안타까운 것은, 유행이 될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을 것이 있는데 가리지 않고 한 자루에 몰아놓는 습성이다. 그런 습성으로는 깊이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입만 열면 발효의 대국이라면서 세태는 발효와 무관한 모습이라니, 참 기이하다. 

    어쨌든 이 땅에 인문학이 신드롬으로 불린 시절이 있었는데, 인간이 소외되고, 맘몬(Mammon, 탐욕의 천사)을 숭배하는 문화가 힘을 얻은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런 진단이라면 지금이 더 기승인데 유행처럼 인문학이 사라졌으니 그게 또 이상하다. 누군가는 인문학은 여전하다고 하겠지만 형식만 남았지 내용은 사라진 것 같다. 그게 문화적 진화의 순서이기는 한 것 같은데, 이 나라에서는 모든 것이 빠르게 일어난다. 빠르게 성장하고 빠르게 망한다. 

     현대 이전의 역사에는 돈을 숭배하지 않고, 인간이 소외되지 않은 아프지 않았던 시대가 대부분이었을까? 이름을 얻은 것들은 존재감이 컸기 때문에 기록되고 회자된다. 맘몬이 등장하는 존 밀턴(1608∼1674)의 『실낙원』은 350여 년 전인 1667년 간행되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성경에서도 존재가 확인되고, 이름을 달리했을 뿐, 4∼5천 년 전으로 또 거슬러 올라간다. 맘모니즘(mammonism, 拜金主義)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문자가 탄생한 이후 기록문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연배우였다. 밀턴의 기록에서 다른 이름을 하나 얻었을 뿐이다.

     문자문명이 탄생한 지...
천세진
천세진 님이 만드는
차별화된 콘텐츠, 지금 바로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시집 <순간의 젤리>(2017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 <풍경도둑>(2020 아르코 문학나눔도서 선정), 장편소설<이야기꾼 미로>, 문화비평서<어제를 표절했다-스타일 탄생의 비밀>, 광주가톨릭평화방송 <천세진 시인의 인문학 산책>, 일간지 칼럼 필진(2006∼현재)
119
팔로워 348
팔로잉 377